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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사순절의 깊은 묵상
임현희 2020-02-25 추천 0 댓글 0 조회 2142

사순절이란? 사순절이란 교회력에서 성탄절과 함께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고난주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영광스러운 부활절을 맞이하기까지 참회하며 주님을 닮아가고자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226()2:12-18여호와께 돌아올지어다

오늘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이스라엘에서경건한 유대인이 되려면 반드시 구제, 기도, 금식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는기도는 사람을 낙원의 중간 지점까지 데려가고, 금식은 문 앞까지 이르게 하며, 구제는 거기에 들어가게 한다.”라는 전승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산상보훈에서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6:1-18).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래서 구제, 기도, 금식을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은 사람들을 향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옷보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찢기 원하십니다.

   요엘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 유다 백성들은 메뚜기 대재앙의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요엘은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을 그들에게 경고(2:1-11)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권고합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촉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통하며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기도 -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며 주께로 나아가오니 용서하소서.

 

사순절2227()21:1-4가난한 중에서

탈무드는 인간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말합니다. 이를 히브리어로는키소’,‘코소’,‘카소라고 합니다.‘키소돈 주머니로서, 돈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코소술잔으로서, 인생의 재미를 어디서 찾는지를 보면 그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카소노여움’‘열정으로서, 무엇을 할 때 신을 내거나 분노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나의키소’‘코소’‘카소는 무엇입니까?

   성전에 나아온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풍족한 가운데 헌금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했던 한 여인은 자신의 전부를 넣었습니다. 그녀는 외적으로 가난했지만, 자신의 깊은 가난을 자각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사람이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여인은 기쁨으로 자신의 전부를 헌금했을 것입니다. 누가 보기에는 가난한 처지와 형편인 그녀가 성전으로 나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는절대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적, 외적으로 가난을 연습합시다. 온갖 가구와 장신구로 치장한 신앙을 비우고, 소유를 하나님 앞에 열어 두는 사순절의 여정을 만들어 갑시다.

기도 - 주님, 나의 재물과 시간의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이 되게 하소서.

 

사순절3228()13:15-22몸을 정결하게

느헤미야 당시에 유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양보할 수 없는 것 세 가지는 안식일, 할례, 월삭이었습니다.‘안식일은 창조의 일곱째 날에 쉬셨던 창조자를 기억하는 날이고,‘할례는 인간의 몸에 거룩을 불어넣는 것이며,‘월삭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제사였습니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는 것은 창조자 없는 세계, 거룩없는 시간, 그리고 신과 단절된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다 사람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았고, 예루살렘 성 안에 장사하러 온 두로 사람들과 거래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즉각 그들의 잘못을 꾸짖고 고치게 했습니다. 만일 그가 백성들의 죄를 유야무야 넘어가거나 묵과했다면, 포로 귀환공동체는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것입니다. 이후 느헤미야는 레위인들로 하여금 몸을 정결히 하고 성문을 지키게 함으로써, 성 밖에서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된 날로 여기도록 고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을 입고 있습니까? 신앙생활 속에 슬그머니 들어온 부정한 생각과 습관이 발견될 때 즉시 회개하고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 속에 주님의 거룩함을 채우는 사순절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주님, 창조주를 기억하고 거룩한 자녀로 하나님 앞에 새로워지게 하소서.

 

사순절4229()5:12-21순종함으로

사도 바울은대표연합의 원리를 통해, 아담의 범죄와 죄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영생에 대비하며 설명합니다. 죄와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킴으로써, 우리를 영원히 그분에게서 떼어 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 주님의 순종이 인간의 불순종을 능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우리는 의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죄의 짐들을 벗고 주님 안에서 참 자유와 생명과 힘을 얻었습니다.

   순종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완전히 굽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기꺼이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한 치 앞도 분별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응답하는 것이 순종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교회는 세상을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할 수 있습니다.

기도 - 주님, 내 생각과 경험, 주장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사순절 첫 번째 주일31(주일)34:4여호와께 간구하매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나의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나의 두려움도 이기게 하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간구한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간구할 때 말입니다.

주님, 나의 기도에 응답하소서.

주님, 나로 두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사순절532()6:18-20누구를 위해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군인이 아무리 무장을 잘 갖춰도 잠들어 있으면 패배하고 맙니다. 영적 군사인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영적 경계인 기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과 기도로 교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또한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그들에게 요청합니다.“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고요,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자도 없어요.”라는 가사의 찬양이 있습니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기도가 필요하고, 나 또한 누군가의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며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항상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사순절633()1:4-11소식을 들었을 때

포로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의 첫 귀환 후로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페르시아 왕의 술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는 왕이 겨울을 보내는 수산 궁에서 본향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듣습니다. 역사적인 포로 귀환은 이루어졌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비참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서응허물어졌고 성문들은 불에 탄 채였습니다. 비보를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즉시 울며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규례를 어긴 이스라엘 자손과 조상들의 죄를 자신과 집안의 죄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죄에서 돌이키는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조국의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그것을 기도의 자리로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왕과 함께 머물던 안락한 궁전에서 뛰쳐나올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조국과 교회의 현실을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먼저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느헤미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자신의 안일에 매이지 말고, 기도의 요청에 적극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 - 주님, 가족과 민족을 위해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소서.

 

사순절734()9:13-19기도하며 간구하며

다니엘은 예루살렘에 내린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사죄와 회복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또한 자신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님의 얼굴빛을 비춰 달라는 간구까지 덧붙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에는 몇 가지 동사가 반복됩니다.‘들으소서’‘용서하소서’‘귀를 기울이소서’‘행하소서’‘지체하지 마소서등입니다. 기도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기도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도, 회개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강력하게 기도하며 간구합니다.

  다니엘로 하여금 담대히 기도하게 하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주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담긴 비밀이 여기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기도하며 간구할 수 있는 영적 근거입니다.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과 긍휼을 의지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담대히 기도하십시오.

기도 - 주님, 하나님의 이름과 긍휼을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하게 하소서.

 

사순절835()20:1-9승리하는 삶

시편 20편은 다윗 왕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시온 산 성소에서 하나님께 소제와 번제를 드리며 승리를 달라고 기도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다윗은 이미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적진에서 휘날릴 승리의 깃발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에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듯한 자신감과 힘이 넘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5:16). 다윗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이미 승리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합니다.“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오직 여호와를 바라보는 사람은 확신 있는 기도를 합니다. 그의 담대한 기도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악에서 선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꾸시는 그분의 응답하심을 기대합시다.

기도 - 주님, 오늘도 승리의 삶을 주실 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사순절936()18:9-14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는 내용이 아니라 자세입니다. 태도는 기도 응답의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즐겨 받으시지만,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 의인으로 자처하는 바리새인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을지라도 그의 감사는 교만을 숨기는 은폐물에 불과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선행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합니다.“따로 서서, 자신을 자랑하며기도한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기도했습니다. 주님은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예배자, 기도자로서 겸손한 자세와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주님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자랑할 수 없는 죄인임을 기억합시다. 또한 누군가를 멸시할 만한 존재가 아님을 기억합시다.

기도 -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사순절1037()116:1-14은혜의 다스림 속에

시편 기자는 사망의 줄과 스올의 고통 같은 고난으로 환난과 슬픔을 만난 일을 말합니다(3). 고난은 그로 하여금 은혜롭고 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게 했고, 하나님을 만나게 했습니다. 결국 시편 기자는 고난이 가져온 은혜를 이렇게 찬송합니다.“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

  박해받으며 고난의 때를 살았던 초대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선교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수 세기에 걸쳐 교회를 박해했던 로마 제국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4세기 초에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로 승인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좁은 문, 고난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큰 예배당 문으로 당당히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도 교인이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편하게 출석할 수 있어도, 그들의 심령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교회는 십자가가 없는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성령의 권능을 잃고 타락의 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잃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소서.

 

사순절 두 번째 주일38(주일)25:6기억하옵소서

나의 사랑하는 책 속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한가득 실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를 사랑하셨다고 기록해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지나온 삶의 여정마다

알알이 맺혀 있습니다.

주님,

혹 제가 고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

지나온 삶 속에서 베푸신 그 사랑을 찾아

주님을 떠올리게 하소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사순절1139()12:1-9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심으로 온 세상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미지의 땅으로 출발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자손도 얻지 못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을 얻을 뿐만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따라 길을 떠난 아브람은 어려울 때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삭을 얻었고, 민족과 나라의 아버지가 되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55:3). 영원하고 확실한 은혜의 말씀을 따르는 자의오늘즉 현재는 하나님께서 주신선물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선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 주님, 내 소리, 세상의 소리에 묻혀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순절12310()17:1-8오직 예수 외에는

변화산에서 변모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초막을 짓고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존경한 엘리야와 모세, 그리고 자신들의 스승인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계속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신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얼마 전에 말씀하신 대로 자신의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 당할 것을 아셨고, 그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홀연히 뒤덮인 빛난 구름 속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온 소리는, 예수님이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분명하고도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리에 엎드린 제자들을 도닥이시며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서 걸어가셨습니다. 신학자요 교부로 존경받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당신은 빵을 사고 싶을 때 동전을 지불한다. 가구를 사고 싶을 때 금전을 지불한다. 그러나 사랑을 사고 싶을 때는 당신 자신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의 값은 당신 자신뿐이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은 수많은 죄의 겉옷을 벗기고 구원하시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옷 벗김을 당하시고, 고난의 십자가에서 새 옷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도 - 주님, 대속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로 살게 하소서.

 

사순절13313()딤후 1:8-14고난 속에 담긴 복음의 능력

<길은 여기에>, <빙점>의 저자 미우라 아야꼬는 폐결핵, 직장암, 파킨스병 등 온갖 병을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 속에서 주님을 더욱 깊은 은혜로 만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청년 시절에 <길은 여기에>를 읽고, 그녀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신앙의 감격을 겅험했습니다. 그녀가 애송했다는 시가 있습니다.“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목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보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다./ 아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옥에 갇힌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을 끝까지 지키실 것을 확신한다고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탁한 아름다운 복음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인생의 고난은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동료입니다. 고난 중에 좌절하고 낙망하여 무기력해지지 말고, 함께하시는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는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함께 고난을 견디고 이겨 내는 성도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예수님이 나를 위해 지신 십자가를 나도 기꺼이 감당하게 하소서.

 

사순절14312()22:23-31곤고한 중에 만난 주님의 사랑

시편 22편은 수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묵상하게 합니다. 때로 우리의 고난은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고는 합니다. 고난은 울부짖음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얼굴을 향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곤고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연상의 여인에게 한 시를 바쳤습니다.“내 눈의 빛을 꺼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 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 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 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시인이 고백하는 사랑을 주님과 나의 사랑으로 바꾸어 생각해 봅시다. 고난 가운데 더욱 깊어지는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고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그 고난을 짊어지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하실 주님을 기억합시다.

기도 - 주님, 고난의 때에 주님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사순절15313()31:31-40그날을 준비하며

나폴레옹은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약속 없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요? 휴가를 앞두고 여행 계획을 잡은 사람은 그날을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또한 살다 보면 약속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만, 약속을 기다리며 행복과 희망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 마를 날 없는 절망과 슬픔 속에 있던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훗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을 재건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본문의새 언약을 맺는 날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약속, 즉 그분의 뜻이 성취되어 죄인인 우리의 구원을 확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약속이 눈앞에서 성취되지 않을지라도, 약속을 이루실 주님을 믿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눈물이 마를 날 없는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까? 여호와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정확히 운행하는 창조주요 절대주이십니다(35). 우리는 약속을 결코 잊거나 어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세상의 어떤 약속보다도 말씀과 복음의 약속을 믿는 지혜를 주소서.

 

사순절16314()요일 2:1-6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 서양을 막론하고 자기가 쓰는 언어를어머니의 말모국어라고 부르고, 자기 나라를어머니의 나라모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어도, 자기도 모르게 모국의 언어와 인격, 문화를 습득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여전이 말씀이 삶으로 체화되지 않은 채로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세속적이고, 행동은 말씀에서 벗어난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내게서 주님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고, 교회의 지체다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려는 마음과 생각에만 머무를 뿐, 실천이 되고 습관이 되기까지 애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자이며, 그 안에 주님의 진리가 없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한 자입니다. 나는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기도 - 주님, 주님의 말씀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소서.

 

사순절 세 번째 주일315(주일_38:9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니

주님, 저는 참으로 나약한 인간입니다.

재물의 유혹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이 너무 많습니다.

한 치 높이의 권력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한없이 굴중합니다.

학벌 앞에서 스스로 무지해지는 약골입니다.

자식이라는 핏줄 앞에서는 더없이 약해집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나의 소원을 세상에 두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주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다윗의 고백처럼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게 하소서.

세상의 삶 때문에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환호하게 하소서.

주님, 저를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강한 신앙인으로 만드소서.

세속적인 열망을 믿음의 소원이라고 포장하지 않게 하소서.

오직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내 삶의 소망이 되게 하소서.

나의 소망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순절17316()24:12-18사십 일 사십 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사십 일 사십 야를 머무릅니다. 단지 십계명 돌판만이 아니라, 출애굽기 20-31장에 이르는 긴 계명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계명, 도덕적인 계명, 성막과 성소에 대한 계명, 안식년에 관한 계명, 제사장에 대한 계명, 각 직분에 대한 계명 등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계명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많은 계명을 받기에 사십 일은 짧은 기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모세가 얼마나 진지했고, 또 고민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십 일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자기들을 인도할 신상, 금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범하고 맙니다(32). 말씀을 대하는 양쪽의 태도가 여기서 극명하게 구분됩니다. 이는 말씀을 받는 모세와, 받을 준비를 하지 못한 백성의 차이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가 약해지고 부흥하기를 멈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선포하는 기간이 짧아서일까요? 혹시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약화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친히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찾아온 말씀이신 예수님 앞에서, 생명을 걸고 십자가의 말씀을 기다립시다.

기도 - 주님,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서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사순절18317()4:5-15그런 물을 내게도

사막에서 오래 살아온 베드윈족은 어떻게 물을 찾아내어 해갈할까요? 모래뿐인 뜨거운 곳이라도 물이 조금식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물이 있는 곳의 온도는 메마른 곳과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윈 족은 사막을 걸으면서, 이처럼 미세한 온도 차이를 발바닥으로 감지한다고 합니다. 목마름과 갈급함이 그들의 발을 이처럼 민감하게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궁즉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통한다.”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는지요? 본문을 보면, 남편을 여러 번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함이 없었던 여인이 나옵니다. 그는남편에 대한 욕구가 자신의 가장 큰 문제라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문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간절함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여인은 그 물을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습니다. 그 물은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이셨고 복음이었습니다. 이로써 여인은 인생의 가장 심각한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자랑했습니다. 내게도 생명수가 흘러넘치고 있습니까?

기도 - 주님, 영원한 말씀이 내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게 하소서.

사순절19318()로마서 5:1-11소망을 이루는 삶

소망을 잃은 인간은 절망하고 절망은 죽음을 불러옵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절망을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소망은 믿음의 미래에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란 구원의 완성,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이 땅에서 인내하도록 격려합니다. 인내가 소망을 낳고, 소망은 다시 인내를 격려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께 소망을 두어야 이 땅의 삶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 소망을 누구에게나 당당히 밝힐 수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나 교회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영생의 소망을 품은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겠다는 소망, 주님과 화평을 누리려는 소망, 주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는 소망을 갖고 오신 주님처럼, 나도 이웃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잘살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를 감내하는 인내의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생명을 다 마치기 전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기도 - 주님,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소서.

 

사순절20319()시편 19:1-14주께 열납되기를

받아들여진 경험은 햇볕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햇볕으로 인해 옷을 한 겹씩 벗어 버릴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로써 누리는 안전과 평안을 말합니다.

  학자들은사람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면 뇌에서 객관적 현실을 담당하는 영역이 기능하고, 3의 눈이 열려 지혜롭게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생명 보호 시스템을 타고나고, 경험으로 얻습니다. 주변 상황으로부터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안감, 흥분, 경계심으로 사고 경직, 공격성, 실수 반복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이 받아들여졌다고 느끼면 안정적이고 평안한 산태가 되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이 받아들여졌다는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근원적으로 새 힘을 얻는 재창조를 경험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고, 내 기도와 마음이 위대하신 그분께 전해졌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요. 나의 반석이시고 구원자 되신 주님 앞에서 내 모든 것이 열납됨으로써 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주님, 십자가의 은혜로 내가 받아들여졌음을 깨닫게 하소서.

 

사순절21320()로마서 8:18-25보이지 않는 소망

연못에 사는 물장구벌레들은 백합 줄기를 타고 하나둘씩 올라간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한 후, 자기가 그런 일을 겪으면 꼭 다른 동료에게 돌아와 알려 주자고 약속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 중 하나가 백합 줄기를 타고 올라가 꼭대기의 잎사귀로 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한 마리의 아름다운 잠자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전에 친구들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왜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물장구벌레의 세계에 속하지 않았고,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돌아간다 해도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간 사람들은 사람의 소식도 애써 들으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그것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소망 안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현재의 삶이 고난의 연속일지라도 그것이 끝은 아니며 반드시 우리가 맞이할 영광이 있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 -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참된 소망을 갖게 하소서.

 

사순절22321()누가복음 22:24-34내게 맡기신 것 같이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면서 유월절 식탁 교제를 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섬기는 자가 곧 다스리는 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앉아서 먹는 자큰 자임이 당연하지만, 주님은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한 주님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어려울 때마다 함께했던 사랑스러운 제자들에게, 자신이 시작하신 나라를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신실하신 하나님께 의탁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옥에도 갈 수 있고, 죽기를 각오하겠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베드로가 부인하고 외면할 것을 아셨습니다.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다 아심에도 세우고 맡기시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베드로는 닭이 울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맡기신 것인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섬기며 시작하신 그분의 나라를 우리 또한 섬기며 함께 일구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 - 주님, 제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사순절 네 번째 주일322(주일)시편 23:1목자 되신 주님께 감사하며

어디로 가야 안전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구를 불러야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추위보다도 배고픔보다도 더욱

나를 떨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희미하게 보이는 십자가

나에게는 십자가를 지신 목자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나를 안위하시고

그 십자가가 내가 가야할 길을 지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늘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붙잡아 주시기 때문에

주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사순절23323()골로새서 1:9-14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며

무디 선생이 예배를 인도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깨달은 바 세 가지를 간증했습니다. “첫째,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둘째,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셋째, 내가 할 일은 십자가에서 완수된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신앙의 대명제를 자주 오해합니다. 믿음을 구원받는 조건이나 수단으로 왜곡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마법인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루터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번역했습니다. 문법상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기에, 이를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는 십자가에 순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나의 공로는 조금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에 힘입어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기도 - 주님, 구속의 은혜에서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하소서.

 

사순절24324()마태복음 9:27-31만져 주심을 감사하며

심리학자들은 포옹의 효과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심리적 안정을 주며, 혈압을 낮추어 심장에 좋으며, 공포와 두려움을 완화하고, 우울증을 감소시키며,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 주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의학적인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중증 환자와 어린아이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찾아가시고 초대하셨으며 어루만져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능히 그들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아픈 부위를 직접 어루만지심으로써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을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넘어서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치료에는 세밀한 배려가 있습니다. 눈을 치료받기 원해서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역경을 딛고 찾아온 한 사람은, 자신을 직접 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당한 모든 고난과 역경에 대한 서러움까지 눈녹듯 녹이는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이 오늘 나를 찾아오신다면, 어떤 부분을 만져 주기를 원하십니까?

기도 - 주님, 주께서 저를 만져 주신 따스한 손길처럼, 나도 아픈 자를 돌보게 하소서.

 

사순절25325()에베소서 5:4-14감사하는 말

말의 힘과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긍정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차원에서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특히 악성 댓글 때문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도 악성 댓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빛의 자녀들에게 마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해인 시인의 말을 위한 기도의 한 단락은 이렇습니다.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기도할 때 감사하는 말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말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작은 것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그는 깊은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햇살에게라는 시는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듭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신앙의 성숙이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이 있는지, 또 그의 입술에 감사의 말이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 -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고 감사하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사순절26326()시편 107:17-22감사의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찬송가 23장의 가사처럼, 만 입을 가지고도 주님이 주신 은총을 다 찬송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우리에게 행하신 주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한 단어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다른 말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숨 쉬며 살아갑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감사할 이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 가운데는 좋은 것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불행해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감사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손양원 목사의 감사는 이를 우리에게 증명합니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삼남삼녀 중에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모든 일은 감사의 제목이며 이유입니다.

사순절27327()하박국 3:16-19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송이라는 복음성가입니다. “그래서 감사, 그래도 감사, 그러나 감사, 그러므로 감사, 그렇지만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러니까 감사, 아주 그냥 감사, 그리 하실지라도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이래도 저래도 감사, 매일매일 감사, 항상 감사, 쉬지 말고 감사, 범사에 감사......,”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환경보다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 믿음을 두고 고백합니다. 상황보다 위대한 것, 환경보다 더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형성되고, 커집니다(10:17).

   믿음은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믿음이 성장하고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수용할 때 믿음이 성숙되고 깊어집니다. 하박국의 믿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까지 성장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기를 바랍니다.

기도 - 주여, 나에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주소서.

 

사순절28328()빌립보서 4:4-7감사함으로 구하라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염려가 없거나, 그에게서 시름과 걱정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부터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경에는 염려에 대한 단어가 51, ‘근심140, ‘걱정1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염려와 비슷한 감정인 두려움518, ‘불안9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염려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 때문에 현재의 가치가 소멸되거나 사라지고 맙니다. 염려는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일의 가치와 간절함을 약화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고 권면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에서 이를 마음을 졸이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 대신 기도하십시오. 간구와 찬양으로 여러분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하나님께 여러분의 필요를 알리십시오”(6)라고 번역했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되, 불평이 아니라 감사함으로하라고 요청합니다. 염려보다 감사로 필요를 구하며,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즐겁게 대화하는 성도가 됩시다.

기도 - 주여, 내 모든 염려를 감사함으로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329(주일)시편 59:17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내가 완전히 멸망받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새롭게 창조되오니

주님의 성실하심 덕분입니다.

주님, 주님은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시며

곤란할 때 피할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 많으십니까?

나를 향한 주님의 계획하심이 어찌 그리 신비롭습니까?

바라기는,

내 평생에 나로 하여금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보며

주님의 끝없는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이 시간에 주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임재 속에 살게 하소서.

 

 

사순절29330()창세기 22:1-14네 사랑을 내게 바치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만나 보지 못한 최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이전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버리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13:44에 나오는 감추인 보화의 비유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이 비유를 가사로 하여 만든 노래가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이라네. 그 보석 발견한 사람들 기뻐 뛰며 돌아가,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거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을 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아들을 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과 사랑을 받으시고 아들 이삭을 그에게 다시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종과 사랑이 담긴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한 우리는 마땅히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해야 합니다. 모든 사랑을 담아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시다.

기도 - 주님,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게 하소서.

 

사순절30331()예레미야 31:15-22나의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 생활하게 하십니다. 유다 백성의 희망은 산산조각 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유다 땅에서 쫓겨나고 땅이 황폐해지는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애곡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절정은 유기입니다.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번범죄한 인간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을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의 통곡과 환난으로 부르짖는 에브라임의 탄식을 들으시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자손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그들은 아픔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지 않았다면 더욱 교만하고 패역하며 멸망의 길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징계는 고통이지만, 악행을 발견하고 회개할 기회를 갖게 합니다.

   환난은 우리의 내면을 정화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합니다. 환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기도 - 주님, 실수 많은 나에게 참사랑을 이루도록 인내하는 믿음을 주소서.

 

사순절3141()호세아 3:1-5포기하지 않는 사랑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펄벅 여사에게는 자페증을 앓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는 딸을 모델로 쓴 자라지 않은 아이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차라리 캐롤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캐롤에게는 그게 더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내가 겪었던 기대와 실망, 고통은 또 얼마였는지......”

   그러나 엄마는 결코 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딸 아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캐롤이 없었다면, 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허영과 오만 속에 빠져 살았을 것이다. 나는 내 딸을 자라지 않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이 세상과 끝까지 맞설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사랑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십자가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모진 질고와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 엄청난 고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잠시 고난을 받았으나, 결국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기도 - 주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에 감사합니다.

 

사순절3242()누가복음 20:9-18사랑하는 아들

많은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와 쾌락주의를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인간 욕망의 마지막은 탐심의 늪입니다. 탐심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이며,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의 손을 내미실 때 뿌리칩니다. 그들의 행위는 탐욕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횡포를 부립니다.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은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을 마땅히 환영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입니다.

   머릿돌은 건물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돌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버림받으셨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교회의 머리(1:18)로 삼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모든 악한 권세는 깨지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완성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사순절3343()로마서 8:31-39누가 끊으리요

산골짜기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버려져 더럽고 냄새 나는 강아지였습니다. 강아지는 굶주림에 지쳐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강아지의 목에서 이름표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메리라는 이름과 함께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한 강아지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이 사실을 주변 어른들에게 말했고, 어른들은 왕실로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신원이 확인된 강아지는 마침내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성 밖으로 나왔던 왕이 메리를 잃어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왕궁으로 돌아간 매리는 성 안에서 왕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안락하게 살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에게 믿음이 있다고 해서 만사가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 때문에 더 큰 위험과 고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성도에게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우리를 붙들어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러나의 인생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를 본인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기도 - 주님, 어떤 고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담대하게 하소서.

 

사순절3444()누가복음 6:27-31사랑하며 선대하며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철자법도 모르는 소연이었지만 훗날 그의 장례식에 덴마크 국왕과 왕비가 참석할 정도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동화를 쓸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에게 베풀어진 작은 복에 감사했습니다. 나의 가난도 복이라고 믿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역경은 나의 복이었지요. 나는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으니까요.”그렇습니다. 홀로 광야 길을 걷는다 해도 주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고통과 아픔의 이야기는 사랑의 이야기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까지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오히려 선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죄인 된 우리는 종종 자신의 관점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며 원수 삼기도 합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이유나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무가치한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하고 선대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사랑하고 선대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운 터닝 포인트들을 만날 것입니다.

기도 - 주님,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선대하게 하소서.

 

사순절 여섯 번째 주일45(주일)요한복음 18:11순종하시며

천방지축인 12명의 대장이 되신 예수님

무리들에게 비친 청년 예수님은 그저 큰 인물이었네.

그러나 그 청년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자 하나님이었네.

청년 예수님을 만난 백성들은 크게 변화되었네.

그들은 와서 위대한 분을 만났고

돌아가는 길은 은혜와 하늘길이 되었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제자들의 마음에는 제각기 큰 야명이 있었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완전히 자신을 버리시네.

예수님은 기도하시네.

하늘의 지성소가 열려 성도들의 천국 같이 평탄하기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게 항복을 받고

믿는 성도에게 이 땅의 평화가 임하기를......

 

사순절3546()누가복음 19:45-48꾸짖으시며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첫 날,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성전이 부패하고 더러워졌습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분노하신 예수님은 가슨 아파하시며 거칠게 행동하십니다. 늘 온화하고 부드러운 예수님에게서 볼 수 없던 말과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회복하고, 백성에게 위로와 사랑과 공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본래 모습으로 재건하고 싶으셨습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될 당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입니다. 무너지고 폐호가 된 예루살렘의 빈 터를 바라보며, 누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고 남깁니다. 욕망과 타락의 결말이 어떠한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그분의 뜻을 중심에 두지 않은 모습이 얼마나 허망하고 비참한지를 보여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2020년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를 돌아봅니다. 주님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오늘 말씀의 꾸짖음을 듣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새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영혼의 샘 같은 교회로 회복해야 한다.”고 주님께서 절실하게 외치십니다.

기도 - 주님, 우리 교회가 주님의 집,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힘쓰게 하소서.

사순절3647()누가복음 22:14-23마지막 식탁에 앉으사

유월절을 기념하며 잡은 양의 피로 허다한 죄를 씻는 은총을 입으려고, 많은 인파가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음으로 정한 십자가의 길로 떠나십니다. 자신의 때를 이미 아셨던 예수님은, 자기 곁에 늘 있던 제자들과 나눌 의미 있는 식사를 계획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식탁을 다시 대할 수 없음을 아시고 여느 때와 다른 모습으로 식사를 하십니다. 떡을 떼어 감사 기도를 하시고 친히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들어서 기도하신 후에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부어지는 내 피요,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기리며 성찬식을 행합니다. 주님께서 차리신 식탁에는 사랑, 자비, 긍휼, 위로, 생명, 회복, 치유, 격려가 담긴 소중한 영의 음식들이 있습니다. 일용할 음식이 우리의 몸을 살린다면, 거룩한 식탁에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삶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분이 친히 음식이 되어 마련하신 거룩한 생명의 식탁에 참여합시다. 성찬은 감사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식탁입니다.

기도 - 주님, 성찬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몸을 입어 살게 하소서.

 

사순절3748()누가복음 22:39-46의탁하시며

순종은 내 생각과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바탕에는 신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으로 시작해서 순종으로 마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혼인잔치 중에 떨어진 포도주를 만드신 가나의 기적입니다. 예수님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거스르지 않고 들어 드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달라는 어머니의 부탁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생명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이 아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시는 중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잔을 들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이 잔은 내가 흘릴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저할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후에 담담하고 담대하게, 좁지만 기쁜, 고난이지만 영광의 빛으로 가득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기도 - 주님, 신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사순절3849()마태복음 27:11-26빌라도 앞에 서셔서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은 당당한 모습입니다. 죄인의 기색은 조금도 없이 의연하시고, 오히려 그분 앞에 있는 빌라도가 안절부절못합니다. 그는 유대 지도자들의 충동 때문에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지만, 아내가 자신에게 전한 말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무리에게 넘겨주며 십자가형을 허락하지만, 자신은 예수님의 피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손을 씻는 비겁한 모습까지 보여 줍니다.

  자신을 향한 음모와 비열한 공격과 집단적인 모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게는 빌라도가 말한 대로 유대인의 왕같은 품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도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계획을 아셨고,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있으셨습니다. 그분의 모습에서 세상 힘에 굴복하지 않는 신성한 능력, 하늘을 얻은 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말이 옳도다.”예수님의 대답은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허약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며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안에서 자신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제자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기도 - 주님, 그리스도인다운 면모를 지키고, 제자다운 삶을 살게 하소서.

 

사순절39410()마가복음 15:33-41십자가에 달리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성 금요일입니다. 간신히 일곱 마디밖에 남기지 못하신 예수님의 처절한 십자가 고통을 생각해 봅니다. 작은 고통 하나도 견디지 못하고, 억울해하며 서러워하고 슬퍼하는 우리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주님의 외침에는 하나님의 부재를 넘어서 고통과 죽음 가운데 버려졌다는 상실감이 드러납니다. 시편 22편은 이러한 의인의 수난과 그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속에 버려지고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상실을 경험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며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그 은혜는 어떤 말러도 형용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 금요일을 보냅시다.

기도 - 주님,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어려움을 선하고 의롭게 이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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