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바로 적용 가능한 비폭력 대화법 4단계'
불꽃2
2012-09-24
추천 0
댓글 0
조회 2134
“혹시 말로 아이를 때리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ㆍ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비폭력 대화
사랑하는 내 아이가 걱정되어 한마디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을 내뱉더니 문을 부서져라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냅다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 다시 불러내려고 따라가보지만 방문은 이미 굳게 잠겨 있다.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며 희생하고 있건만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굳게 잠긴 방문 밖에서 부모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손 한 번 대지 않고 키웠다고요?
비폭력 대화법을 배우기 위해 한 NVC(Nonv iolent Communication의 약자로 미국에 본부가 있다) 센터를 찾은 많은 부모들이 하나같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손 한 번 대지 않고 키웠다"라는 말이다. 즉, 때리지 않고 아이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아이를 귀하게 여기며 소중하게 대해왔는지에 관해 항변한다고 한다.
손을 대기는커녕 매 한 번 들지 않았다는 표현은 다시 말해 자신들이 '비폭력적'인 부모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에 관해 약간의 정보나 지식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한 많은 부모들의 이해 정도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비폭력 대화'를 치고받는 육탄전 없이 그저 '말'만 주고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로만' 타인을 대해온 자신들의 태도와 습관에 관해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이것이 타인이 아닌 자녀와의 관계에서라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전적으로 주기만 하는 희생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강력한 '갑'의 존재이면서도 부모 스스로는 감정적으로 '을'이라 여기는 탓에 한 번 어긋난 소통의 문제에서 양쪽 모두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곤 한다.
비폭력 대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또 다른 유형의 부모도 있다. 이들은 비폭력 대화법을 단순히 '아이들이 예의 바르게 말하는 기술'로 이해한다. 부모 맘에 들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언어습관을 고치겠다며 한국NVC센터를 찾는다. 한마디로 '싸가지'없게 말하는 자녀의 고약한 '말본새'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언어습관이라고 이해한 점에서는 어쩌면 손찌검 유무로 폭력과 비폭력 대화 구분의 기준을 삼는 부모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히 '아이의 나쁜 말본새' 교정으로만 이해한 부모는 원인은 무시한 채 결과만 고쳐보겠다고 덤비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부모의 유형은 모든 문제가 아이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나누는 감정적인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과연 비폭력 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해졌을 것이다. 매를 들고 때리는 것과도 무관하다 하고, 아이들의 예의 바른 언어습관 습득도 전부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소통 불능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소통 불능은 매우 괴롭다.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아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펜이 칼이 되기도 하듯, 말이 흉기가 되기도 한다. 말로 사람을 때리거나 죽일 수 있다. 비록 아이에게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고 자부하더라도, 비록 아이가 어른 듣기 좋게 말을 하고 있더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정작 부모 자신이 아이를 말로 때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뱉어내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흉기, 말로 말이다. 그렇다면 대세라면 대세고, 트렌드라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비폭력 대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연민의 대화, 비폭력 대화
NVC는 우리나라에서는 비폭력 대화로 번역되어 사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간디가 사용한 의미와 같다고 한다. 곧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러운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연민의 대화(Compassionate Communication)라고 해석되고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할 때는 종종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비폭력 대화는 사람들이 날 때부터 지닌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이다. 기술에는 말하기뿐 아니라 듣기도 포함된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대화 방법인 것이다. 비폭력 대화는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에 의해 고안됐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인종차별과 충돌로 인해 비폭력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평생을 폭력에 대한 평화로운 대안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화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고안되고 개발된 것이 지금의 비폭력 대화다. 비폭력 대화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을 재구성하도록 이끌어준다.
비폭력 대화법을 익히면 습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 역시 경청하면서 정중하고 솔직하게 관심을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 형식은 매우 간단하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기술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효과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실제 체감하는 감정의 강도는 매우 높다.
이 비폭력 대화법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부모는 많을 것이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아이의 사춘기를 이해하고 싶다면 혹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원한다면 비폭력 대화법으로 접근해보자. 특히 아이와 갈등이 생기면 감정이 북받쳐서 폭력적으로 말하게 되거나 아이와 행복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데도 좀처럼 진척이 없어 낙심한 부모들이라면 이 비폭력 대화법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자녀와 나누는 비폭력 대화는 깨어 있는 대화법이 돼줄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를 가지고 대화를 할 때, 아이를 조종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려고 할 때 아이와의 아름다운 연결은 끊어지게 돼 있다.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환한 미소를 짓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한다고 해도 의도가 있는 대화는 아이를 무장하게 하고 관계를 단절시킨다.
아이를 때리는 말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에도 이 같은 공식은 적용된다. 내 아이라도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 해야 되는 말과 할 수 있는 말일지라도 '잘' 해야 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좋은 의도와 뜻은 가려진 채 아이에게는 그저 해서는 안 되는 말로 다가가 상처만 줄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자식에게는 조금 함부로 말해도 괜찮다는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어 비단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적인 대화는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에 국한되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특히 아이의 자존감을 흔드는 말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자존감이라고 점잖게(?) 풀어내니 몇몇 부모들은 자신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폭력이나 폭언은 쓰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가 죽어", "넌 왜 사니?", "넌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널 왜 낳았을까, 후회된다",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내 눈앞에서 사라져" 등등의 말은 그 어떤 제고의 여지없이 아이를 죽이는 말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생채기를 낸다. 어떤 경우에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만약 이 같은 말을 해왔거나, 혹은 하고 있다면 아이는 이미 심각한 폭력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말의 폭력은 그 상처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폭력을 멈추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기는 더 어렵다.
그 다음으로 많은 부모들이 일상적으로 뱉어내는 폭력 언어는 크게 열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비난, 비판, 모욕, 반박, 진단, 분석, 꼬리표 붙이기, 비교하기, 경쟁 부추기기, 상과 벌의 정당화, 책임을 부인하는 말, 강요다. 언뜻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상어로 풀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부모인 자신들이 아이에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얼마나 폭력적인 언어로 대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아이의 행동이나 말이 부모인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비난이나 비판, 모욕이나 반박, 분석, 진단, 꼬리표 붙이기 등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도덕주의적인 판단 언어라고 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너희가 나쁜 놈들이지", "학교 행사 때 빠져나가 PC방에 가는 녀석이 지각이 대수겠어?", "엄마가 이런 일로 네 담임선생님 전화나 받아야겠어?", "그러니까 네가 발전하지 못하는 거야" 등은 아이를 비난하는 말이다. "너희가 도둑놈이야?", "말본새 좀 봐라", "이렇게 무식하니 뭘 하겠어?", "넌 진짜 철이 없어" 등은 비판이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미친 거 아니니?", "인간이면 그렇게 못한다" 등은 모욕이다. 특히 모욕을 주었을 때 사람은 누구든 귀를 닫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을 외롭게 만드는 말도 있다. 바로 반박이다. "시끄러, 이 새끼야! 뭘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됐거든, 너나 잘해", "네가 대학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등이 그 예인데 이 경우 보통 관계가 끊어지는 결과가 초래되곤 한다. 이 밖에 "넌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거야", "아무래도 어릴 때 널 남이 키워줘서 그런 거 같아" 등이 뒤를 잇는다. 이쯤 되면 폭력적인 대화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아이를 때리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들과 아주 '다른 말'이 아님을 알게 됐을 테니 말이다.
폭력 언어 뒤에 숨은 부모의 욕구
서울 서초구에 사는 정 모씨(43)는 아예 입을 닫고 사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 때문에 한국NVC센터를 찾았다. 정씨는 두 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이 가족과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유일하다고. 성적은 반에서 3등 안에는 꼭 들 정도로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강남 8학군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엄마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왜 전교 3등이 되지 못하는지 늘 아들을 닦달했다. 설상가상 둘째 아이는 공부를 잘해 끝없이 동생과 비교까지 했다. 원래 음악에 소질이 있던 아이는 언감생심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엄마의 언어폭력에 견디다 못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것이다. 아이가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네가 사람이야?", "나가 죽어라"였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탓인지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적인 대화의 원인은 대부분 공부와 성적에 관한 것이다. 아이 성적에 엄마의 자존감을 투영시키다 보니 대화에는 날이 서게 마련이다. 또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공부로 인한 이익과 불이익을 경험한 부모들은 더더욱 아이의 성적에 집착하게 된다. 성적에 웃고 우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워 보일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우 멀어지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병들고 부모는 상심한다. 그렇게 어긋난 관계는 회복되기 힘들며 어린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상처는 여전히 부모와 자녀 사이를 지배한다.
실제 한국NVC센터를 찾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녀로 인해 상처받은 성인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의 폭력적인 대화 이면에는 부모의 욕구가 숨겨져 있다. 비폭력 대화법에서는 이 근원적인 욕구에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욕구란 반드시 필요한 것,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나이, 학력, 돈 등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욕구가 아니다. 욕구를 표현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공부'는 욕구일까, 방법일까. 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부모는 강요를 한다. 내 아이를 포함한 모든 타인에게는 그 사람만의 욕구가 있을 거라 생각해줘야 한다. 비난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된다. 남편이 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면 아내가 화가 난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편이 하면 왜 화가 날까. 존중의 욕구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 대한 존중은 곧 나에 대한 존중으로 인식되니까. 더 들어가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다"라는 말에는 스스로 찾아야 할 엄마의 자존감을 아이의 성공을 통해 얻으려는 욕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내 욕구를 들여다보면서 아이의 욕구를 읽어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관계는 한층 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습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스스로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비판이나 평가를 들었을 때 습관적으로 보이는 반응, 곧 변명해 물러나거나 반격하는 행동 양식을 탈피할 수 있다. 무엇을 원하는가, 그 욕구에 집중할 때 비로소 연민의 깊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존중과 배려, 공감하는 마음이 길러지고 서로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치유의 힘까지 가진다. '말'이 나와 내 아이를 살리는 것이다.
사실 정씨 또한 아이와 함께 행복해지길 원했을 뿐 망가진 관계 속에서 높은 성적만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의 성적표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기저에는 성적으로 평가받던 엄마의 학창 시절의 상처가 깔려 있었다. 아들과 함께 한국NVC센터에서 비폭력 대화 강의를 듣고 있는 정씨는 아이의 문제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하고 아이와의 관계 회복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아이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사랑이라고 포장된 일방적 강요를 내려놓고 아이를 관찰하기 바란다. 아이의 욕구에 관심을 보이는 시작만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비폭력 대화의 힘이다.
Mini interview
비폭력 대화는 기술이 아닌 태도다 - 이윤정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저자, 한국NVC 부모교육 전문가)
Q 어떤 부모와 자녀들이 비폭력 대화 강의를 듣는지 궁금하다.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가장 많다. 주변 지인들이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왔다는 분들도 있다(웃음). 자녀 입장에서 과거의 상처를 털어내지 못하고 성인이 된 후 찾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자녀들의 출가 전후로 사위와 딸, 혹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결혼 선물로 강의를 듣게 하는 경우도 있다.
Q 부모와 자식 사이의 소통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닌 듯하다.
어느 시대나 부모 자식 간에는 '말이 안 통한다'라고 생각해왔을 것이다(웃음). 그러나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시기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사춘기를 겪는 중·고교 시절의 자녀와 부모 간의 문제였다면, 요즘은 이르면 두세 살짜리 아이들과의 소통에 관해 젊은 엄마들이 고민한다.
Q 부모들이 처음부터 폭력적인 언어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외국의 비폭력 대화 전문가들이 보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조금 특수하다. 왜냐하면 학습에 관한 강요가 폭력 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공부와 성적으로 부모들은 폭력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맞는다. 그렇지 않아도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며 입시에 대한 압박까지 떠안고 사는 게 우리 아이들인데 부모의 잔소리에 상처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를 단순히 말하는 스킬로 이해하면 사실 별 실효가 없다. 왜냐하면 자녀의 성적에 대한 감정적 정리 없이는 비폭력 대화도 없기 때문이다.
Q 요즘 유독 공부에 관해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 부모들이 바로 특목고 세대다. 그 경쟁에서 이겼든 졌든 공부가 주는 기득권을 체험했다. 자의든 타의든 부모들로부터 소위 말하는 치맛바람 뒷바라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대가 부모가 됐으니 더 소통이 안 된다. 폭력적인 언어를 의무와 권리로 생각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잘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이 문제다.
Q 비폭력 대화를 실천에 옮기면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궁금하다.
가장 큰 변화는 남이 하는 폭력적인 말들이 들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어눌해졌다는 분들도 계시다(웃음). 상대방은 변하지 않은 채 나만 잘하는 것 같아 억울한 느낌이 든다고도 한다. 물론 초기의 경우다.
Q 비폭력 대화법의 성공적인 적용 사례를 하나만 들어달라.
학교에서 유명한 문제아가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모이면 그 학생에 대한 푸념을 하기 바쁠 정도로 사고뭉치였던 모양이다. 그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우리 센터에서 비폭력 대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이후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연 저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하고 아이 입장에서 보기 시작하니 아이의 소리가 들리더란다.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고 아이도 밉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Q 마지막으로 비폭력 대화법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가르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부모가 할 일은 자녀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서로 확인하지 못하고 가르치기만 해서는 탈이 난다. 가르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도 많지만 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아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 말의 의도를 읽으려고 언제나 노력하라 조언하고 싶다. 아이의 거짓말도 어른의 기준에서만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이윤정기자, '한겨레에듀'[에서 발췌)
사랑하는 내 아이가 걱정되어 한마디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을 내뱉더니 문을 부서져라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냅다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 다시 불러내려고 따라가보지만 방문은 이미 굳게 잠겨 있다.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며 희생하고 있건만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굳게 잠긴 방문 밖에서 부모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손 한 번 대지 않고 키웠다고요?
손을 대기는커녕 매 한 번 들지 않았다는 표현은 다시 말해 자신들이 '비폭력적'인 부모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에 관해 약간의 정보나 지식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한 많은 부모들의 이해 정도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비폭력 대화'를 치고받는 육탄전 없이 그저 '말'만 주고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로만' 타인을 대해온 자신들의 태도와 습관에 관해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이것이 타인이 아닌 자녀와의 관계에서라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전적으로 주기만 하는 희생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강력한 '갑'의 존재이면서도 부모 스스로는 감정적으로 '을'이라 여기는 탓에 한 번 어긋난 소통의 문제에서 양쪽 모두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곤 한다.
비폭력 대화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또 다른 유형의 부모도 있다. 이들은 비폭력 대화법을 단순히 '아이들이 예의 바르게 말하는 기술'로 이해한다. 부모 맘에 들지 않게 말하는 아이의 언어습관을 고치겠다며 한국NVC센터를 찾는다. 한마디로 '싸가지'없게 말하는 자녀의 고약한 '말본새'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언어습관이라고 이해한 점에서는 어쩌면 손찌검 유무로 폭력과 비폭력 대화 구분의 기준을 삼는 부모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히 '아이의 나쁜 말본새' 교정으로만 이해한 부모는 원인은 무시한 채 결과만 고쳐보겠다고 덤비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부모의 유형은 모든 문제가 아이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나누는 감정적인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과연 비폭력 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해졌을 것이다. 매를 들고 때리는 것과도 무관하다 하고, 아이들의 예의 바른 언어습관 습득도 전부가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소통 불능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소통 불능은 매우 괴롭다.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아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펜이 칼이 되기도 하듯, 말이 흉기가 되기도 한다. 말로 사람을 때리거나 죽일 수 있다. 비록 아이에게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고 자부하더라도, 비록 아이가 어른 듣기 좋게 말을 하고 있더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정작 부모 자신이 아이를 말로 때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뱉어내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흉기, 말로 말이다. 그렇다면 대세라면 대세고, 트렌드라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비폭력 대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연민의 대화, 비폭력 대화
NVC는 우리나라에서는 비폭력 대화로 번역되어 사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간디가 사용한 의미와 같다고 한다. 곧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러운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연민의 대화(Compassionate Communication)라고 해석되고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은 전혀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할 때는 종종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비폭력 대화는 사람들이 날 때부터 지닌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대화 방법이다. 기술에는 말하기뿐 아니라 듣기도 포함된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대화 방법인 것이다. 비폭력 대화는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에 의해 고안됐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인종차별과 충돌로 인해 비폭력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평생을 폭력에 대한 평화로운 대안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화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고안되고 개발된 것이 지금의 비폭력 대화다. 비폭력 대화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을 재구성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비폭력 대화법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자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부모는 많을 것이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면 더더욱 말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아이의 사춘기를 이해하고 싶다면 혹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원한다면 비폭력 대화법으로 접근해보자. 특히 아이와 갈등이 생기면 감정이 북받쳐서 폭력적으로 말하게 되거나 아이와 행복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데도 좀처럼 진척이 없어 낙심한 부모들이라면 이 비폭력 대화법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한다. 자녀와 나누는 비폭력 대화는 깨어 있는 대화법이 돼줄 것이기 때문이다. 의도를 가지고 대화를 할 때, 아이를 조종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려고 할 때 아이와의 아름다운 연결은 끊어지게 돼 있다.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환한 미소를 짓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한다고 해도 의도가 있는 대화는 아이를 무장하게 하고 관계를 단절시킨다.
아이를 때리는 말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에도 이 같은 공식은 적용된다. 내 아이라도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 해야 되는 말과 할 수 있는 말일지라도 '잘' 해야 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좋은 의도와 뜻은 가려진 채 아이에게는 그저 해서는 안 되는 말로 다가가 상처만 줄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자식에게는 조금 함부로 말해도 괜찮다는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어 비단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적인 대화는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에 국한되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특히 아이의 자존감을 흔드는 말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자존감이라고 점잖게(?) 풀어내니 몇몇 부모들은 자신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폭력이나 폭언은 쓰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가 죽어", "넌 왜 사니?", "넌 밥 먹을 자격도 없어", "널 왜 낳았을까, 후회된다",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내 눈앞에서 사라져" 등등의 말은 그 어떤 제고의 여지없이 아이를 죽이는 말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생채기를 낸다. 어떤 경우에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만약 이 같은 말을 해왔거나, 혹은 하고 있다면 아이는 이미 심각한 폭력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말의 폭력은 그 상처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폭력을 멈추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기는 더 어렵다.
그 다음으로 많은 부모들이 일상적으로 뱉어내는 폭력 언어는 크게 열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비난, 비판, 모욕, 반박, 진단, 분석, 꼬리표 붙이기, 비교하기, 경쟁 부추기기, 상과 벌의 정당화, 책임을 부인하는 말, 강요다. 언뜻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상어로 풀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부모인 자신들이 아이에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얼마나 폭력적인 언어로 대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아이의 행동이나 말이 부모인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비난이나 비판, 모욕이나 반박, 분석, 진단, 꼬리표 붙이기 등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도덕주의적인 판단 언어라고 한다.
|
아이들을 외롭게 만드는 말도 있다. 바로 반박이다. "시끄러, 이 새끼야! 뭘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야!", "됐거든, 너나 잘해", "네가 대학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등이 그 예인데 이 경우 보통 관계가 끊어지는 결과가 초래되곤 한다. 이 밖에 "넌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거야", "아무래도 어릴 때 널 남이 키워줘서 그런 거 같아" 등이 뒤를 잇는다. 이쯤 되면 폭력적인 대화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아이를 때리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들과 아주 '다른 말'이 아님을 알게 됐을 테니 말이다.
폭력 언어 뒤에 숨은 부모의 욕구
서울 서초구에 사는 정 모씨(43)는 아예 입을 닫고 사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 때문에 한국NVC센터를 찾았다. 정씨는 두 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이 가족과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유일하다고. 성적은 반에서 3등 안에는 꼭 들 정도로 우수한 편이다. 그러나 강남 8학군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엄마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왜 전교 3등이 되지 못하는지 늘 아들을 닦달했다. 설상가상 둘째 아이는 공부를 잘해 끝없이 동생과 비교까지 했다. 원래 음악에 소질이 있던 아이는 언감생심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엄마의 언어폭력에 견디다 못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것이다. 아이가 엄마로부터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네가 사람이야?", "나가 죽어라"였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탓인지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적인 대화의 원인은 대부분 공부와 성적에 관한 것이다. 아이 성적에 엄마의 자존감을 투영시키다 보니 대화에는 날이 서게 마련이다. 또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공부로 인한 이익과 불이익을 경험한 부모들은 더더욱 아이의 성적에 집착하게 된다. 성적에 웃고 우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워 보일지 모르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우 멀어지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병들고 부모는 상심한다. 그렇게 어긋난 관계는 회복되기 힘들며 어린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상처는 여전히 부모와 자녀 사이를 지배한다.
|
내 아이에 대한 존중은 곧 나에 대한 존중으로 인식되니까. 더 들어가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다"라는 말에는 스스로 찾아야 할 엄마의 자존감을 아이의 성공을 통해 얻으려는 욕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내 욕구를 들여다보면서 아이의 욕구를 읽어보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관계는 한층 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습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스스로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원하는가를 의식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명확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비판이나 평가를 들었을 때 습관적으로 보이는 반응, 곧 변명해 물러나거나 반격하는 행동 양식을 탈피할 수 있다. 무엇을 원하는가, 그 욕구에 집중할 때 비로소 연민의 깊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존중과 배려, 공감하는 마음이 길러지고 서로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치유의 힘까지 가진다. '말'이 나와 내 아이를 살리는 것이다.
사실 정씨 또한 아이와 함께 행복해지길 원했을 뿐 망가진 관계 속에서 높은 성적만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의 성적표에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기저에는 성적으로 평가받던 엄마의 학창 시절의 상처가 깔려 있었다. 아들과 함께 한국NVC센터에서 비폭력 대화 강의를 듣고 있는 정씨는 아이의 문제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하고 아이와의 관계 회복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아이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다면 사랑이라고 포장된 일방적 강요를 내려놓고 아이를 관찰하기 바란다. 아이의 욕구에 관심을 보이는 시작만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비폭력 대화의 힘이다.
아이에게 바로 적용 가능한 비폭력 대화법 4단계 1단계-평가의 말을 관찰로 분리하기 "여자들은 게으름뱅이야!"→ "내 여동생은 지도 보는 것을 어려워한다."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어."→ "우리 딸 친구를 만났는데 인사를 안 하더라." "준표는 낭비가 심해."→ "준표는 여름 운동화를 다섯 켤레나 가지고 있어." 2단계-생각과 느낌을 분리하기 "난 내가 고3 엄마로 부족하다고 느껴."→ "나는 고3 엄마 역할이 부담스러워." "넌 나를 피곤하게 해."→"난 피곤해." "이럴 땐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느껴."→ "결정을 내리기가 무척 힘들어." 3단계-수단과 방법이 아닌 욕구에 맞추기 "저한테 욕하지 마세요!"→ "저는 존중받고 싶어요." "난 돈이 제일 중요해."→"안락하게 살고 싶어." "날 그냥 내버려둬."→"난 쉬고 싶어요." 4단계-부탁과 강요 구별하기 "난 네 방에만 오면 속이 터진다."→ "교복은 침대 위에 있고, 양말은 의자 위에 있네. 교복은 옷장에 걸고 양말은 세탁기에 넣어줄래?" "쓰레기 좀 갖다 버려라."→ "쓰레기 좀 갖다 버려줄 수 있니?" "학생 본분에 맞게 머리를 단정히 해라."→ "파마를 풀고 머리를 묶거나 단발로 자르면 어때?" |
Mini interview
비폭력 대화는 기술이 아닌 태도다 - 이윤정
(「아이는 사춘기 엄마는 성장기」저자, 한국NVC 부모교육 전문가)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가장 많다. 주변 지인들이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왔다는 분들도 있다(웃음). 자녀 입장에서 과거의 상처를 털어내지 못하고 성인이 된 후 찾아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자녀들의 출가 전후로 사위와 딸, 혹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결혼 선물로 강의를 듣게 하는 경우도 있다.
Q 부모와 자식 사이의 소통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닌 듯하다.
어느 시대나 부모 자식 간에는 '말이 안 통한다'라고 생각해왔을 것이다(웃음). 그러나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시기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사춘기를 겪는 중·고교 시절의 자녀와 부모 간의 문제였다면, 요즘은 이르면 두세 살짜리 아이들과의 소통에 관해 젊은 엄마들이 고민한다.
Q 부모들이 처음부터 폭력적인 언어를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외국의 비폭력 대화 전문가들이 보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조금 특수하다. 왜냐하면 학습에 관한 강요가 폭력 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공부와 성적으로 부모들은 폭력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맞는다. 그렇지 않아도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사춘기를 보내며 입시에 대한 압박까지 떠안고 사는 게 우리 아이들인데 부모의 잔소리에 상처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를 단순히 말하는 스킬로 이해하면 사실 별 실효가 없다. 왜냐하면 자녀의 성적에 대한 감정적 정리 없이는 비폭력 대화도 없기 때문이다.
Q 요즘 유독 공부에 관해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 부모들이 바로 특목고 세대다. 그 경쟁에서 이겼든 졌든 공부가 주는 기득권을 체험했다. 자의든 타의든 부모들로부터 소위 말하는 치맛바람 뒷바라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대가 부모가 됐으니 더 소통이 안 된다. 폭력적인 언어를 의무와 권리로 생각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잘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이 문제다.
Q 비폭력 대화를 실천에 옮기면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궁금하다.
가장 큰 변화는 남이 하는 폭력적인 말들이 들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어눌해졌다는 분들도 계시다(웃음). 상대방은 변하지 않은 채 나만 잘하는 것 같아 억울한 느낌이 든다고도 한다. 물론 초기의 경우다.
Q 비폭력 대화법의 성공적인 적용 사례를 하나만 들어달라.
학교에서 유명한 문제아가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모이면 그 학생에 대한 푸념을 하기 바쁠 정도로 사고뭉치였던 모양이다. 그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우리 센터에서 비폭력 대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이후 다른 시각으로 아이를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연 저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 하고 아이 입장에서 보기 시작하니 아이의 소리가 들리더란다.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고 아이도 밉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Q 마지막으로 비폭력 대화법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가르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부모가 할 일은 자녀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서로 확인하지 못하고 가르치기만 해서는 탈이 난다. 가르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부모들도 많지만 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아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 말의 의도를 읽으려고 언제나 노력하라 조언하고 싶다. 아이의 거짓말도 어른의 기준에서만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이윤정기자, '한겨레에듀'[에서 발췌)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