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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임현희 2022-06-27 추천 9 댓글 0 조회 831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를 해석하면 입춘이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날씨를 빗대어 말할 때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말의 근원지는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소군원이라는 시에서 중국 한족이 오랑캐에게 굴복해야만 했던 아픔을 그려낸 가슴 절절한 시이다.

 

漢道初全盛 한나라가 비로소 번성해

朝廷足武臣 조정에는 무신이 충분한데

何須薄命妾 어찌 하필 박명한 아녀자인가

辛苦遠和親 괴로워라 멀고 먼 화친 길

 

掩涕辭丹鳳 눈물 삼키고 궁궐을 작별하고

銜悲向白龍 슬픔을 머금고 흉노 땅으로 향하네

單于浪驚喜 선우는 매우 놀라 기뻐하는데

無復舊時容 어찌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올까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으니

自然衣帶緩 저절로 옷과 띠가 느슨해지는데

非是爲腰身 몸맵시 위해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네

 

  이 시는 왕소군이란 여인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이다.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 때 후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화가는 왕소군이 뇌물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추녀로 그림을 그렸다. 이에 황제는 왕소군을 찾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는 오랑캐에게 후궁을 보내야 했다. 그러자 황제는 가장 못생겼다고 생각한 왕소군을 지명했다. 그러나 떠나는 날 왕소군의 얼굴을 처음 본 황제는 땅을 치며 후회했고 화가는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 시는 작은 가슴 속에는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을 그리워하면서 만든 시이지만, 큰 가슴 속에는 중국 한족이 오랑캐에게 당한 수모를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무치도록 아픈 마음은 마음 한편에 두고춘래불사춘만 남아서 혹독한 시절을 보낼 때의 마음을 전할 때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84:2]

 

  추운 겨우내 세월을 견딘 보상으로 봄은 늘 흐드러진 꽃으로 세상에 축복을 가져다준다. 전국 방방곡곡에 기다리던 봄이 왔고 꽃으로 장식된 축제는 상춘객들을 기다리고 있건만 우리 대한민국의 마음은 여전히 혹독한 겨울이다. 마스크로 입과 코만이 아니라 어여쁜 봄의 마음까지 가린 채 사람 사는 향취를 즐길 겨를이 없다. 그래서 꽃은 변함없이 화사하지만 꽃 길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한 마디로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준 섬뜩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일상은 멈춰버리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스스로 출입을 자제하고 집안에서 묵묵히 생활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또 다른 일상이 되었다.

 

  마스크는 내 입 모양을 가리고, 호흡을 가리고, 표정을 가리고, 속마음도 가렸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나도 가리려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성전 예배에 불참하게 되면 죽을 것만 같이 생각했던 신앙이 영상 예배라는 이름으로 어물쩡대더니 어느덧 아랫목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래도 되는 것처럼 내 몸이 편안함으로 나를 위로했다.

 

  마스크가 내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사람과의 교제를 막아 세우다가 내 영혼의 수의(壽衣)가 되지 아니할까 염려스럽다. 스포츠에는 작전 타임이 있고 음악에는 쉼표가 있다. 인류는 Covid19로 인한 멈춤을 한탄하기보다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위대한 기회로도 발돋음 할 수 있다.

 

  실패와 멸망으로 치닫는 사람들은 위기 앞에 목소리가 점점 시들어 들지만 회복과 성공으로 치솟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목소리 높여 그분을 내 삶과 형편의 자리에 초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초청장 내용까지 소상히 일러주셨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2-3]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계시며 일하고 계시고 긍휼을 베풀기 원하시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주고 계신다. 나의 간절한 부르짖음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어느새 절망의 구름과 재앙의 폭풍은 사라지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1-13]

 

  구약성경에 보면 나오미라는 여인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지만 기근이 일자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방 나라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거기서 남편이 죽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모압에서 결혼한 두 아들마져도 죽고 말아 졸지에 세 명의 과부만 남게 되었다. 결국 이민 생활에도 실패한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둘째 며느리는 친정으로 가고 큰 며느리 룻은 끝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실패자의 어두운 그림자를 밟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를 동네 사람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이가 누구냐? 나오미가 아니냐?”그때 나오미는이제 나를나오미라 부르지 말고마라라 불러 주십시오.”라고 고백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우리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마라라는 이름의 뜻은괴롭다, 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등진 사람의 인생길은 마라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껏 숨쉬며 누린 나오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라가 다시금 나오미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분명해진다. 안일함과 게으름과 합리화와 편리주의의 마스크를 벗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 앞에 인생 무릎을 조아려야 한다. 그것만이 회복이요 부흥이며 살 길이다.

 

  대한민국 사람 40%는 다시 태어난다면 이 땅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지진으로 생이 위협받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9%가 다시금 그 땅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덴마크는 10%, 브라질은 37%이다. 내가 어떤 땅과 형편에 놓이게 되면 달라지는 것일까? 다소 변동이 생길 수는 있을 것이다.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이 행복의 변동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내 행복과 평안을 위하여 내가 문 두드리며 부르짖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으시고 선택하셨으며 그의 백성 삼으신 사랑이신 하나님은 이미 마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 인생의 문 앞에 오셔서 끊임없이 문 두드리고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석학인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박사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서 ··에서 질병이 인류 역사를 바꾸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인류는 세균(혹은 바이러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 왔다. 세균이 공격하면 인류가 방어하는 식이다. 인간은 이를 통해 면역을 강화했고, 세균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만들었다.

 

  세균의 돌연변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앙의 돌연변이이다. Covid19에 대처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운용했던 영상 예배, 줌 회의, 모임 축소를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의 사람들의 교제의 영원한 대안으로 끌고 가려는 편리 주의를 빨리 배격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인간이 돌출시킨 돌연변이 신앙의 양태를 오래 사용된 마스크처럼 벗겨내야 한다. 믿음의 일상을 속히 되찾아야 삶의 일상도 회복된다.

 

  내 믿음을 가렸던 마스크를 벗고 봄이 왔으니 봄 냄새를 맡고, 앞동산에 뻐꾸기 울어대니 메아리 소리 들려주고, 꽃이 피었으니 꽃의 화사함을 느끼고, 은혜의 때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찾아 나와 그 은혜를 만끽하자. 마라의 영역이 넓혀지지 않도록 성령님이 매일 안겨주시는 나오미를 품에 안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 영혼에 봄날이 다가왔으니......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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