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작은’의 소중함과 신중함을 일깨워 주는 말씀으로 수두룩하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복음 16:10]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열왕기상 18:44]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0:42]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열왕기상 3: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야고보서 3:5]
우리 나라 속담에도“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적은 힘을 들여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의 기회를 놓쳐 큰 힘을 들이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닭 잡아 겪을 나그네 소 잡아 겪는다”는 속담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 예상하고 예견하며 예측을 하고 또한 전조 증상이 나타나게 될 때에 잘 대처하여 큰 어려움이 생겨나지 않도록‘유비무환’(有備無患)하게 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언 6:6-8]
중국 춘추전국시대 지낭(智囊) 한비자가 말하기를“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만들어지고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것에서 이루어진다. 고로 세상일을 다스리려는 자는 세밀한 것에서 시작하고 어려운 것은 쉬운 것부터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만리장성도 첫 한 돌덩이로 시작되고 거성 궁궐도 한 기초석으로 부터 지어져 간다. 열길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고 위대한 대업도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사소하고 작은 것을 우습게 여기고 경시한다. 그것이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다. 진정 지혜자는 사소한 것도 주의하고 큰일을 하는 위인들은 작은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사소하고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에도 충성케 되고 적은 것에 성공하는 이가 결국 위대한 성공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태복음 25:21]
우리의 일상생활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는‘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있다. 옅은 뜻은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이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나풀나풀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강력한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효과(效果)라는 말의 사용처는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에 의하여 나타나는 보람 있는 일이나 결과를 말함으로 매우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킬 때 사용한다. 따라서 나비 효과에 대한 해석을 짙게 내린다면 두 가지 의미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소한 변화가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나비 효과 이론은 1972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으로, 후에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결정론적인 비주기적 유동 Deterministic Nonperiodic Flow〉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결정론적 카오스(Deterministic Chaos)의 개념을 일깨운 새로운 유형의 과학이론이었다. 이렇게 처음에는 과학이론에서 발전했으나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기상 현상을 시뮬레이션(Simulation)하며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기에 나비 효과를 가장 잘 설명하는 현상은 일기예보이다. 이 이론의 태동이 기상관측과 무관하지 않기에 이를 통한 일기예보는 나비 효과의 개념이 가장 잘 적용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은 어떤 쪽으로 어떻게 진전되고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날갯짓을 등한히 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지혜롭게 대처함이 나비의 날갯짓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되는 최상의 비결이다.
기상청에서는 지구촌을 휘감아 도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을 시뮬레이션하여 우리의 삶에 일기예보라는 이름으로 큰 이로움을 안겨준다. 수많은 날 들 속에 그분들의 노고로 인해 생명과 삶의 안정화를 꾀한다. 그러나 어쩌다가 예보에 엇나가게 되면“기상청 사람들이 야유회 가는 날에도 비가왔대”하며 노고의 훈풍을 강풍으로 날려버리곤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또 다른 의미의‘나비 효과’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바란 광야에서 모세에게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수령 한 사람씩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내라고 명령하셨다.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에 정탐꾼으로 선정된 자들을 보내며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그들이 사는 땅을 정탐하고 증거물로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신 광야에서부터 에스골 골짜기의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와 석류와 무화과를 따서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오기까지 장장 40일 동안 정탐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다.
개인의 생각이 공동체의 의견으로 결집 되어가는 첫 단추의 이름은‘속삭임’과‘속닥거림’으로 나뉜다. 낮고 가는 목소리로 정답게 가만가만히 하는 소리는 긍정적인 낮의 대화로 진전되어 가고,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자꾸 이야기하는‘속닥거림’은 대부분 부정적인 밤의 대화로 진전된다.
정탐꾼들 중 속닥거림의 부류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그들은 남방 땅과 산지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는데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에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가져온 포도송이의 알보다도 많이 왕창 쏟아 놓았다.
“그들의 입으로는 악을 토하며 그들의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시편 59:7]
정탐하면서 한 지파의 지휘관인 수령의 생각과 판단의 날갯짓과 그 날개들의 어우러짐의 속닥거림은 이스라엘 진영에 큰 토네이도를 일으켰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2-3) 하며 지도자를 향한 원망을 넘어 하나님에게까지 원망의 화살을 쏘아대더니,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게 되었습니다.
속닥거림의 무리 중에는 납달리 지파의 수령인 윕시의 아들‘나비’가 있다. 누가 속닥거림의 일성의 주인공인지는 몰라도 나비라는 정탐꾼은 그 그룹에 속한 열 명 중의 한사람 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이 정탐꾼들의 보고와 그로 인한 파장을 일명‘성경 속의 나비 효과’라고 명하고 싶다.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민수기 13:14]
하나님은 속닥거림의 날갯짓이 아닌 여호수아와 갈렘의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의 속삭임의 날갯짓에 전능하심의 옷을 입혀 주심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안겨 주셨다.
나의 날갯짓으로 인해 흩날리는 가루는 원망과 불평과 부정함과 시기와 미움과 질투와 폄훼와 죽이는 것인가, 아니면 꽃가루를 날려 수정을 시킴으로 또 다른 생명을 약동시키는 살리는 날갯짓인가?
사람 사람의 속삭임의 날갯짓으로 은혜의 나비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거룩한 속삭임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내 생각의 날개 위에 가득 싣자. 우리 주님의 보혈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동적인 힘으로 나풀거림의 효능(效能)을 시작하자. 그리고 얼마 후에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크고 은밀한 나비 효과의 효험(效驗)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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