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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사순절의 깊은 묵상
임현희 2021-02-14 추천 0 댓글 0 조회 1750

사순절이란? 사순절이란 교회력에서 성탄절과 함께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고난주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영광스러운 부활절을 맞이하기까지 참회하며 주님을 닮아가고자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사순절1217() 258 2:36-39 회개와 성령의 선물

재의 수요일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회개는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세례 요한의 첫 번째 설교는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3:2).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도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였으며, 사도 베드로도 오순절 설교에서 회개를 말했습니다(2:38).

기독교 신앙의 위기는 회개 없는 신앙, 회개를 건너뛴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많은 이들이 회개는 건너뛰고, 죄사함, 그리고 성령의 선물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그리고 베드로도 먼저 회개를 요구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회개의 대상이 믿지 않는 이방인이 아니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스스로 회개할 필요 없다고 자신했던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확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혹시 회개를 건너뛰고 성령의 선물을 간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회개보다 다른 사람의 회개를 촉구하며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관심은 다른 사람의 회개가 아닌 바로 당신의 회개입니다.

기도 - 하나님, 회개를 건너뛴 교만한 모습을 용서하여 주소서.

 

사순절2218() 341 벧전 2:21-25 고난으로의 부르심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다 보면 기적과 영광도 경험하지만, 십자가의 고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혹시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겪게 되더라도 예수님이 그리셨던 것처럼 슬픔을 기꺼이 참으라고 말씀하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합니다. 또한 이것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고난이 와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영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24). 둘째, 고난 받는 우리에게는 어떤 적이 공격해 와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25). 우리에게는 우리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할 힘을 주시며 선한 길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20). 믿는 자들에게는 고난이 끝이 아닙니다. 고난 뒤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억울한 고난에 대해 원망하거나, 욕하거나, 위협하지 않게 하소서.

 

사순절3219() 445 41:8-10 나의 종 이스라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모든 열국이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고레스의 종이 아니라나의 종곧 하나님의 종이라고 부르십니다(8-9).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나의 벗이라고 하시며(8)‘버리지 아니하였다.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9-10). 이 약속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도 이런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 출발점은나의 종 너 이스라엘즉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될 때, 우리는 사람이나 물질의 포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벗이 되며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엇인가의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회개하며 하나님의 종임을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면 더 이상 두렵거나 놀랄 이유가 사라집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 하나님, 하나님의 종이 되어 여전히 내손을 붙잡아 주시는 주님의 오른손을 경험하게 하소서.

 

사순절4220() 212 2:6-11 종의 형체로 오신 그리스도

빌립보 교회의 초기 성도였던 유오디아,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순두게, 이 두 사람 사이에 큰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고 권면합니다(4:2).‘같은 마음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소개합니다(5). 그것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입니다. 평강은 결심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형체로 오신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임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종 되기를 싫어하는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려면 주인 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자기를 비우다라는 헬라어케노시스는 자기 포기를 말합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죽기까지 복종하시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평강이 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기도 - 하나님,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사순절5222() 569 34:23-24 양 떼를 먹일 목자

구약에서 목자는 왕이나 정치 지도자를 지칭하는 메타포입니다. 목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은 양 떼를 먹이고 돌보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만 먹고, 연약한 자, 병든 자를 돌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흩어져 버렸습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직접 선한 목자를 보내셔서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찾겠다고 약속하십니다(10-16).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23절에 나오는한 목자’‘내 종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먹이고 돌보아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양과 같아서 어디가 푸른 풀밭인지, 어디가 쉴 만한 물가인지 잘 모릅니다. 방어 능력도 없습니다.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인도할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먹이실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야 비로소 내게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기도 - 하나님, 오직 예수님만 내 삶의 목자가 되게 하소서.

 

사순절6223() 38 37:24-25 평화의 왕

에스겔 3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막대기 환상을 보여 주시며 분열되었던 두 나락 통일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제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남과 여, 유대와 사마리아, 선민과 이방인, 모든 경계가 다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대화합과 통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가정과 일터,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마다 왕 노릇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 왕을 섬기고, 한 목자를 섬기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갈등 가운데 있는 이들이 한 목자, 한 왕을 섬기고, 그분과 규례를 준수한다면 서로 다른 두 막대기가 할지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를 섬기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하나님의 법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회복이 일어나고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기도 - 하나님, 오직 예수님만 내 삶의 왕으로 섬기게 하소서.

 

사순절7224() 419 72:1-7 공의로운 재판

시편 72편은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이 후대의 왕들을 교훈하기 위해 지은 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시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주의 백성을 공의와 정으로 재판하십니다(2).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시며, 압박하는 자를 꺾어 주십니다(4). 하나님의 종이자 메시야가 이루는 회복으로 온 피조세계에 평화를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당에 불의한 재판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도 궁핍함을 벗어나지 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자들이 적합한 처벌을 당하지 않는 부조리가 있습니다. 공의로운 재판으로 참 평화를 이루시는 메시야가 다스리심으로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기를 고대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를 찾아오신 선택의 순간, 하나님의 판단력과 공의로 선한 일을 이루 내기를 기도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가 온 땅에 가득하기를 갈망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서 지니신 정의를 본받아 다스리게 하소서.

 

사순절8225() 410 2:11-18 주는 평화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를 용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 힘으로 용서가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 용서가 안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갈등과 전쟁, 다툼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우리의 화평이시기 때문입니다(14).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노를 대신 짊어지시고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습니다.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시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원수와도 화평하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되고, 오해가 있을수록 더욱더 예수님 앞에 나아갑시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구합시다. 상대방을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매일매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할 수 없었던 용서가 시작되고, 내가 누리지 못했던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어 주신 화평의 길을 걸어갑시다.

기도 - 하나님, 갈등과 분노, 미움과 다툼이 있을 때마다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소서.

 

사순절9226() 382 벧전 1:6-13 고난 후 영광

AD 64년 로마의 원형경기장 근처에 있는 가게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화재는 금방 시내 전역으로 번지며 약 열흘 동안 로마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다급해진 네로 황제는 이 모든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씌워 무자비한 박해를 가하는데,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고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이런 상황 가운데 가는 세대, 오는 세대를 향해 마치 유언처럼 작성된 편지입니다.

   순교를 앞둔 사도 베드로는 그 어떤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5). 물론 잠깐 여러 가지 시련으로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6). 그래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합니다(7).

뜨거운 불을 통과하여 값비싼 순금이 만들어지듯 어렵고 힘들지만, 그 시련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정금 같은 믿음이 주어질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있더라도 진심으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고난 후에 주어질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고난 뒤에 있을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의 시련을 인내하게 하소서.

 

사순절10227()25 61:1-4회복과 자유를 주실 메시야

이사야 61장은 여호와께서 세우실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예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메시야에게기름을 부으셨다라는 표현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가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선지자와 제사장, 왕의 사명을 맡은 자라는 것을 뜻합니다. 선지자의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복음 전도입니다. 제사장은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합니다. 왕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여 자유와 해방을 이룹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우리 주님은 안식일 회당에서 이 부분을 읽으시고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4:21).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곳곳마다 이런 치유와 회복, 자유와 해방의 사역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회복과 자유를 주실 메시야를 전해야 합니다. 메시야가 증거되는 곳곳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고, 마음이 상한 자가 치유되며, 포로 된 자 갇힌 자는 자유하게 되는 은혜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주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기도 - 하나님, 주 여호와의 영을 내게 부으사 회복과 자유를 주실 주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사순절1131() 497 4:23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

예수님은 갈릴리 전역에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과 약한 것을 치유하셨습니다. 본문과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마태복음 9:35에 언급되는데, 이 두 구절 사이에는 산상수훈(5-7)과 치유 사건(8-9)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마태복음 5-9장이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기 위하여 이 세 가지 사역을 아우르셨습니다.

   서울 정동, 대구 남산동, 광주 얌림동 등에는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선교 기지가 있었습니다. 양림동은 과거 죽은 아이를 짚으로 싸서 나무에 알아 풍장을 지내던 곳이었는데,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생명을 살리는 지역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지역에서 생명을 살리는 교육과 교회와 병원 사역을 시행했습니다. 그들은 남녀 학교인 숭일학교와 수피아학교를 개교하여 인재를 양성했고, 양림교회를 창립하여 복음을 전하였으며 제중원을 개원하여 병든 자를 치유하였습니다. 이 사역들은 하나님 나라 전파, 지역의 근대화, 그리고 독립 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말씀을 가르치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약한 것을 고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치유하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소서.

 

사순절1232() 472 12:9-21 안식일 회당에서 일어난 일

손 마른 사람이 성하게 된 사건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베푸신 기적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시간적 경계가 확실한 안식일에, 율법을 행함에 철저한 이들이 모인 공간적 특수성을 가진 회당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사랑하고 선을 지켜야 함이 안식일의 진정한 정신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그리고는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손을 내밀라.”하시고 그손을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며 자신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이사야에 예언된여호와의 종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겸손한 종으로서 병자의 질병을 치유하셨습니다.“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8:17). 안식일에 회당에 가득한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손 마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10).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양보다 더 귀한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셨습니다(12). 우리가 세상의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는 사람들 중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고치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기도 - 하나님, 지금도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사순절1333() 503 1:29-31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최홍종은 의료 선교사 포사이트와 길을 가던 중 한센병을 심하게 앓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포사이트는 말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가 직접 안아 말 위에 태웠습니다. 이동 중에 여인이 손에 쥔 지팡이를 놓치자 포사이트가 최홍종에게 외쳤습니다.“미스터 최! 그 지팡이 좀 집어 주시오.”그가 여러 번 외쳤지만, 최홍종은 차마 한센병자의 지팡이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큰 충격에 빠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서양 의사는 이역만리 남의 땅에 와서 한센병자도 자기 자식처럼 돌보는데 나는 같은 동족이면서도 떨어진 지팡이도 만지지 못했으니 그러고도 내가 조선 사람이라 하겠는가?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천당 가기는 아직 멀었다.”이후 최홍종은 한센병자들을 자기 식구처럼 돌보기 시작하여광주 나병원’(현 애양원)의 개원과 운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만으로 병 고칠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포사이트가 가진 사랑의 마음으로 아픈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예수님의 사랑을 나눠 봅시다.

기도 -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과 행위를 우리도 본받게 하소서.

 

사순절1434() 452 1:40-42 불쌍히 여기사 손을 대시며

예수님 당시 한센병자들은 율법상 부정한 사람들이었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지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감수하시며 병자의 몸에 손을 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느끼신불쌍히 여기심은 헬라어로스플랑크니조마이인데, 명사형인스플랑크나는 몸의 내장(배 속)을 가리킵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풀이합니다.“복음서가 예수님의 긍휼(불쌍히 여기심)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분의 배 속이 움직였다고 표현할 때는 무언가 아주 깊고 신비스러운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이 긍휼로 움직일 때, 모든 삶의 근원이 떨리고 모든 사랑의 근거가 활짝 열리며, 거대하고 마르지 않고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온유하심이 드러난다.”

예수님의 보이지 않는 몸의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긍휼로 한센병자의 몸에 손을 대시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마을로 복귀하여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의롭게 된 우리도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며 예수님처럼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닮기 원합니다.

 

사순절1535() 96 5:22-24 손을 얹으사 살게 하소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에게 와서 자신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딸에게 손을 얹으시어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던 중 열두 해 혈루증을 앓아 온 여자를 만나 치유하시느라 지체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때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들이 급하게 다가와 회당장의 딸이 이미 죽었다고 알립니다. 그러니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에 오실 이유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말을 덮어 두시고 회당장에게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회당장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이 아이의 부모를 데리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아이의 손을 잡고달리다굼.”하시니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일어나서의 헬라어아니스테미는 부활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먹을 것을 주라 하신 것은 소녀가 죽었다가 살아났음을 확실하게 하는 증거였습니다. 살리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의 권능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길 기원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생명을 살리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의 권능이 나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소서.

 

사순절1636() 451 4:30-31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 성전 미문에서 한 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였고 구걸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무엇을 얻을까 하여 두 사도를 쳐다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지만, 자신이 가진 것,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즉시 발고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3:1-10).

사람들은 베드로가 또 어떤 표적과 기사를 일으킬까 주목했지만 베드로는 몰려든 무리에게 자신들이 아닌 한나님의 종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왜 우리를 주목하느냐......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1-16).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신 하나님의 종 예수님이 사도들의 믿음을 통하여 회복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도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나타나는 능력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의지하오니 아프고 병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소서.

 

사순절1738() 428 56:6-8 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 옛날 오랑캐 땅에 잡혀간 한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 본 시구로, 봄이 왔으나 봄을 느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남의 땅에 머물고 있는 이에게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이, 봄 같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남의 땅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유다 백성들이 느꼈을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렇게 겨울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들에게 봄을 선언하시며 백성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나라를 빼앗겼다 해서 거기가 끝이 아니라는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다 시작해 보자고, 일어나라고, 돌아가자고 말입니다. 봄이 되면 겨우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게 됩니다. 눈 녹아 물이 흐르고 새싹이 돋는 것을 보게 되기에 봄에는 별명이 하나 있습니다.‘새봄입니다. 새 여름도, 새 가을도, 새 겨울도 없으니 새봄은 봄만의 특권입니다.

   포로 된 백성들이 돌아오듯이, 십자가 고난 이후 부활이 있습니다. 얼음 깨고 만나는 새봄인 셈입니다. 어찌 살아야할까요. 6절이 정답을 담고 있습니다.“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이렇게 사는 이들은, 절대로 봄을 놓치지 않습니다. 늘 새봄을 살게 됩니다.

기도 - 하나님, 내 영혼에 봄날 되어서 늘 새롭게 하소서.

 

사순절1839() 526 55:1-3 사랑으로 초대합니다

지치고 목마른 영혼들에게 초대장이 날아왔습니다. 초대자는 하나님이시오, 배달부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이 땅을 살며 목마르지 않은 자 없겠으나, 남녀노소, 빈부귀천 상관없이 누구나 다 와도 좋다는 초대자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 장소가 특이합니다. 물로 나아오라는 것이요, 특전이 하나 있는데, 다 무료입니다.

물로 나아오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신약시대에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예수님은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말씀하시고 계시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결국 그리스도 예수 이외에 생명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순절 기간, 주님은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11:28)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물가로 기꺼이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진정한 쉼이 있습니다.

기도 - 하나님, 주님의 초대에 목마른 자 누구나 기꺼이 응하게 하소서.

 

사순절19310() 527 55:6-9 때가 되었습니다

시간의 개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보편적인 시간으로 연, , , , , 초와 같은 시간의 개념입니다. 이를 헬라어 원어로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카이로스라는 시간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어느순간을 말합니다. 전도서 3장에서는 이를라고 표현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카이로스의 때에 민감하셨던 분입니다.‘때가 차매공적인 활동을 시작하셨고, 최초의 기적을 베푸시던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서 예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적을 베푸실 의향이 전혀 없음을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신 이후에 때가 가까이 왔다며 십자가의 길로 당차게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주님을 만나 인격적으로 체험한가 있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았기에 구원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을 기억합시다.“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49:8). 그러고 보니 사순절 기간, 이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최적기요, 주님의 도움이 있는 구원의 순간입니다.

기도 - 하나님,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이 구원의 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사순절20311() 436 65:13-16 땅의 끝에서 흐르는 노래

전라남도 해남에땅끝 마을이 있습니다. 두 발로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땅이요, 끝입니다. 인생에도 땅끝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입니다. 시편 61:2을 보면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에게 바벨론은 땅끝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끝이라는 말을 일컬어서끄트머리라 했습니다. 끝이라는 말과 머리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땅끝 마을은 사실 바다의 시작점입니다. 또한 땅끝을 경험한 다윗은 거기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바벨론 포로를 통해 땅끝을 경험한 유다 백성들에게도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로부터 새롭게 출발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라입니다. 환난으로 끝맺는 삶이 아니라 그 환난은 이제 사라졌으니 다시 시작하자는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십자가는 땅끝과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부활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끄트머리의 은혜입니다.

기도 - 하나님, 땅끝에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소서.

 

사순절21312() 425 66:12-14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욥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녀들과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온몸에 종기가 생겨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부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와 욥 너에게 죄가 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겠냐며 취조하듯이 실토를 종용했습니다. 이런 친구들의 말에 욥은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6:25)라고 하며, 친구들의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됨을 토로했습니다. 친구들의 처음 의도는 위로였고, 욥을 바로 세우겠다는 생각이었겠습니다만 바른말들이 오히려 욥의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위로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긍휼하심에 정답이 있습니다. 열벙에 걸린 베드로 장모의 손을 지긋이 잡아 두며 일으켜 세우시는, 고름투성이 한센병자에게 손을 대시며 사랑을 표현하시는,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자기를 낮추시며 복종하시는, 말보다 삶으로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진짜 위로인 것입니다. 그리고 430년의 긴긴 노예생활에서 끄집어내시고 70년의 포로생활에서 자유롭게 하시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진짜 위로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기도 - 하나님, 상처 입은 이 땅을 위로하소서.

 

사순절22313() 182 2:16-21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고백의 힘

어느 주일, 그날의 설교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가 설교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에이, 말에 무슨 힘이 있다고.” 설교자는 할머니에게어르신, 일어나 보세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일어났습니다.“이제 앉아 보세요.”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앉았습니다.“보셨습니까? 제가 말로 일어나라 하니, 어르신이 몸을 일으키시고 앉으라 하니 어르신이 앉으셨지요. 어르신 댁에서 자녀들에게저 쪽에 있는 간장 좀 다오.’라고 하시면 간장을 전해 주시오. 이런데도 말에 힘이 없다 하시겠습니까?”결국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옷은 입어야 맛이고, 음식은 먹어야 맛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입으로 고백될 때 맛이 납니다. 이 고백은 성령 안에 머물 때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따스하게 품어 주실 때 이를 느낀 사람의 입에서는따스한 성령의 언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고백인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을 소유한 능력자가 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성령 안에서 고백할 수 있는 신앙,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사순절23315() 600 10:43-45 종이 되어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 오히려 존중 받는 으뜸의 자리에 위치한다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대개는 허드렛일을 하는 것을 종의 모습이라고 여깁니다. 일부분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종이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종은 주님의 종이 되어 주의 백성들을 섬깁니다. 섬김의 목적은 믿음의 공동체를 세위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친히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주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주님처럼 많은 사람을 위해서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신분이 낮은 자, 힘없는 자가 신분이 높은 자와 힘 있는 자를 섬기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높은 자입니다. 주께로부터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종의 길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호칭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기도 - 하나님,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종이 되게 하소서.

 

사순절24316() 595 12:42-44 지혜 있고 진실한 종이 되어야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는 종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여기서 종들은 주님의 종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하나님의 소유를 맡아 잘 관리하고 돌보라고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돌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혜 있고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들을 제대로 돌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자주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지혜 있고 진실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혜 있는 주님의 종에게는 어려운 상황이나 문제들을 원만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안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몇몇을 평화롭게 만드는 일은 쉬울 수 있으나, 모두가 행복한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주님의 종들이 지녀야 하는 지혜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지혜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과 직위에 맞는 책임을 다하면서도 그 직책이 주는 힘과 권위를 탐하지 않는 사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주님의 종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우리가 지혜 있고 진실한 주님의 종들이 되게 하소서.

 

사순절25317() 501 16:16-18 구원을 전하는 종

바울의 일행이 길을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종은 일행을 따라오면서까지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소리를 지르고, 여러 날 그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게다가 이 귀신 들린 여종으로 주인들이 큰 이익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도 모자라 그녀를 이용하는 주인의 종이 된 비천한 인생 앞에 바울이 나타났습니다. 여종은 하나님의 종인 바울에게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자신에게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바울을 향해 소리치지 않았을까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리스-로마의 미신적 배경에서도 구원의 능력이 나타났음을 거듭 상기시킵니다. 당시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전하는 종들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할 때 구원이 선포되는 능력을 나타내는 회복의 종으로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상황과 환경에 굴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전하는 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사순절26318() 312 ❙∎ 6:19-22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라

여러분이 날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용할 양식, 자녀들의 성공, 건강, 물질들을 달라고 간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복 받으면 살기를 원하시므로 우리가 매일 간구하는 것을 들어주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매일 구하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함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매일 거룩해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함에 이른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서 담대하게 나아가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의 거룩한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열망하며 살아가십시오.

기도 - 하나님, 의로운 종이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사순절27319() 319 1:10 하나님 편에 서는 주의 종들

지금은 장성한 딸이 아주 어렸을 때너는 누구 편이니?”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나는 옳은 사람 편이야!”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물론 편을 굳이 나누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아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까닭은 그들을 복음 안에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을 할 때 그에게 가장 큰 적은 이교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함께 신앙 생활하는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 가운데 기독교를 위협하는 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근본정신을 잘못 알고 왜곡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사도 바울은다른 복음이라고 칭합니다. 그 누구라도 주님이 전해 주신 것, 사도 바울이 받아 교회에 가르쳐 준 것, 그것을 왜곡하거나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것은 저주받아 마땅할 정도로 교회에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반대편, 옳은 편에 서서, 초대 교회를 올바른 토대 위에 굳건히 세위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편에 서서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길 간구합시다.

기도 - 하나님, 무엇이 옳은지 식별하게 하시고 옳은 행동을 하게 하소서.

 

사순절28320() 482 19:1-5 찬송하라고 부름 받은 주의 종들

접혀 있는 사진을 펼쳐보았더니, 처음에 보았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의 장면이 펼쳐진 겅험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별로 안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다 펼쳐 보니 훈훈한 상황이거나,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다 펼쳐 보니 안 좋은 상황인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경우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까?

   요한계시록 18장에서 19장으로 넘어가는 것도 접힌 사진을 보는 경우와 같습니다. 18장은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로 끝납니다. 우리가 18장에서 보는 것은 끔찍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19장은 전혀 새로운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 번이나 찬송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4-5절은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찬양하고, 하늘에서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사순절29322() 190 22:1-5, 27:46 버림받은 자의 찬송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 속에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를 향해 외치십니다.“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27:46). 십자가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자의 호소가 울립니다. 시편 22편의 고난 중에 읊조리는 다윗의 기도와 같습니다. 다윗은 의인을 돕지 않으시는 전능자의 침묵을 애통해합니다. 낮에도 밤에도 부르짖는 탄식에도 응답이 없음에 절규합니다. 누구나 고통의 순간, 믿음으로 부르짖는 간구에도 현실적 변화가 없을 때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의 고백을 계속해서 살펴봅시다. 다윗은 원망과 탄식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찬송을 이어 갑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합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에 극적 반전이 없어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찬송합니다. 찬송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는 울부짖는 자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의뢰하는 자들을 구해 주십니다.

기도 - 하나님,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애통해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사순절30323() 345 27:7-14 믿을 이 주님뿐

서점에 가면 사람들의 눈이 잘 띄는 곳에 이런 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처세술, 인간관계에 성공하는 법, 재산을 모으고 불리는 법, 행복하게 사는 법 등입니다. 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씁니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고스란히 담아, 할 수만 있다면 그 책을 읽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다윗은 세상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실패의 고난을 맛보았습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깨져서, 곁에 아무도 없고, 누구도 그를 도와 주지 않는 절박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부재, 그 고독한 침묵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다윗은 도무지 견뎌 낼 수 없는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도움을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접하시고,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다윗이 오늘 우리에게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귀중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간절히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강하고 담대함으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기도 - 하나님, 의지할 이 아무도 없을 때 주님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사순절31324() 380 31:1-17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칠언 중 마지막은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입니다. 예수님은 피와 물을 다 쏟아내고,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는 순간, 마지막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불러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였을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7:59-60).

   시편 31:5은 경건한 유대인의 저녁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은 창조주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명의 근원인 생기,‘루아흐입니다. 다윗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좌우되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의 손에 부탁합니다.‘부탁하나이다아페키드로 모든 것을 이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다윗은 죽음과 같은 고통 중에 죽음을 초월한 부활의 생명을 호소하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한 번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며 뜻을 이루시는 참 하나님이심을 신뢰하는 고백 위에 자신의 앞날과 생명까지도 맡길 수 있는 순종의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 하나님, 어려운 일을 겪을수록 주님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사순절32325() 336 69:17-22 나의 환난을 주님께 아룁니다

시인은 대적자에게 비방과 수치, 능욕을 당하여 어려움 중에 있음을 토로합니다. 마치 쓸개를 음식물로 먹은 듯한 괴로움이 있습니다. 지독한 갈증을 느낄 때 초를 마시게 하여 속을 뜨겁게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 산성, 피할 바위라고 노래하였지만 지금은 보호 장치 하나 없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간 내내 읽은 시편들은 모두 탄원시입니다. 150편의 시편 안에는 탄원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탄원시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결국 탄원에서 찬양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시인이 당하는 극한의 고통을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속히 임하기를 간구하지만 여전히 칼로 찌르는 것 같은 비방이 시인을 괴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선한 말과 행동으로 의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비방과 수치를 당할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도 그 대상을 향하여 비방하고 갚아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까? 나의 상황을 방치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찬송을 거두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원수들로 인해 겪는 극한적인 상황을 주님께 솔직히 아뢰고, 주께서 일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이쓴것은 그것뿐입니다.

기도 - 하나님, 나를 공격하는 비방과 수치를 감당할 인내와 지혜를 주소서.

 

사순절33326() 135 86:1-4 주를 의지하는 종

요즘 젊은이들의 SNS를 살펴보면 자신의 삶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멋지고 좋은 것들로 포장합니다. 분명 그들 마음속에도 공허함과 아픔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내면 깊이 자리한 상처들은 숨기고 싶어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 빠졌는지 하나님께 아룁니다. 탄원시는 억압당하는 자, 고통당하는 자, 수모를 당하는 자의 모습을 철저하게 조명합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다윗의 글이 마칠 영향력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그럼에도 다윗은 숨김없이 자신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탄식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만난 주님을 찬양합니다. 자신 위에 더 이상 다스릴 자 없는 최고의 통치자임에도 자신을이라 칭하며, 왕 되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게 노예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자랑과 영광입니까? 고난과 절망 중에 의지하는 주님입니까? 주를 의지하는 종의 자리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게 하소서.

 

사순절34327() 499 17:1-3 참 지도자

지도자는 가르쳐 이끌어 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목적이나 방향에 따라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보여 주고 그 길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살아가다 보면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마땅한 영향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성경은 지도자는 그 신분만큼이나 책임도 따르기 때문에 지도자로 칭함 받기를 즐겨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23:10. 3:1). 그래서인지 본문을 읽으면 양들이 선한 목자를 사모하듯,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집니다.

   주님은 혼자 남는 고독하고 위태로운 순간에도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영화롭게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임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권세를 명확하게 아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만 부여받은 권세입니다. 지도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께로부터 무슨 사명을 받았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지도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도 -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권세를 갖고 계심을 알게 하소서.

 

사순절35329() 305 42:1-4 정의를 베푸는 여호와의 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는 열방의 모든 백성들을 향한 구원계획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곧 여호와의 종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을 택하여 위기상황에 빠진 죄인들을 통치하고 다스리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참된 평화를 얻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정의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분은 쇠하거나 낙담하지도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전능하심으로 우리에게 정의를 베푸실 여호와의 종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내 안에 정의가 회복되어 의인으로 새날을 살아갈 것을 결단합시다. 시간의 계약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우리 삶의 부정한 것들을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맡깁시다. 오직 정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회복이 나타날 것을 소망하며 하루를 채워 봅시다.

기도 - 하나님, 내 안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소서.

 

사순절36330() 379 49:1-7 이방에 빛을 비추는 여호와의 종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가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모두가 꽃이야라는 동요입니다. 어디에 피었든, 어떤 꽃이든 꽃은 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그들의 메시야와 그분의 사역을 조롱한다 해도 그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지극히 낮아지셨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정체성과 사명을 잃고 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여호와의 종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을 따라 빛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꽃들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복음의 능력을 발휘할 때입니다.

기도 - 하나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사순절37331() 267 50:4-11 곤고한 자를 도우시는 여호와의 종

혹한기 때 오랜 기간 자동차를 방치해 놓았다가 시동을 켜는데 걸릴 듯 말 듯 켜지지 않았습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까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키를 돌렸더니 결국 시동이 켜졌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고 전력을 계속 공급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든 핍박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않으시고 묵묵히 그것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분은 그것이 곤고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방법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학자들의 혀, 학자들같이라는 말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마다 새로운 말씀을 듣기 위해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셨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을 듣고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핍박을 피하거나 간고와 질고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의 종에 대한 의무를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사역에 계속해서 능력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여호와의 종들인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께 귀 기울일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매 순간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공급하시는 은혜로 살아가게 하소서.

 

사순절3841() 158 53:1-3 버림받은 여호와의 종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아담에게 주어진 창조세계에 대한 문화위임은 깨어졌고, 하나님의 평화도 잃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자신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판단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빈자리를 채워 줄 대상을 당대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와 통치자, 권세와 힘을 가진 정치적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관계와 잃어버린 나라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여호와의 종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분은 정치혁명가도 아니었고 권력과 권세도 없었기 때문에, 무시와 멸시를 받았고 간고와 질고를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수려한 모습이 아닌, 죄의 권세 아래 비참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보좌에 좌정하지 않으시면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런 우리의 모습 때문입니다.

기도 - 하나님, 언제나 내 마음의 보좌에 좌정하시고 통치하여 주소서.

 

사순절3942() 303 53:4-6 대속하는 여호와의 종

인생에 없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공짜’‘비밀’‘정답입니다. 링컨 기념관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수많은 희생의 대가로 얻은 것입니다.

찔림’‘상함’‘채찍은 죄에 대한 징계와 형벌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인 우리에게 필연적인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가시면류관으로 머리에 찔림을 당하고, 대못으로 손과 발에 못 박힘을 당하며,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무수한 구타와 짓밟힘으로 피부는 물론이고 뼈까지 으스러질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형벌을 여호와의 종, 예수님이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공짜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종,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도 - 하나님, 예수님의 찔림, 상함, 채찍의 대가가 헛되지 않은 삶을 살게 하소서.

 

사순절4043() 311 벧전 3:17-20 선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

아이패드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에 CEO 스티브 잡스가 방문했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아이패드에 대한 비난과 함게 그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가 짧게 한마디했습니다.“사지 마세요(Don't buy it)." 스티브 잡스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거세계 논쟁을 벌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능을 직접 시연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두고 그분을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어떠한 논쟁도 하지 않으시고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인류 구원과 회복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비난과 수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들이기에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하거나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그때에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불의한 자를 회복시키려는 선하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기도 - 하나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비난과 조롱 앞에서 당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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