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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대림절의 깊은 묵상
임현희 2022-11-26 추천 0 댓글 0 조회 1135

대림절이란? 대림절이란 성탄절을 맞이하기 전 4주를 의미합니다. 대림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과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완성해 가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기쁨의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1127(주일)1151:18-25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통해사람의 아들이자 성령으로 잉태된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이 일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가만히 관계를 끊고자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 놀라운 비밀, 곧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요셉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태어날 아기의 이름은예수’, 그 뜻은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진정한 의미를 듣게 되자, 요셉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통해서 일어날 일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예언의 성취임을 선언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정녀의 잉태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것입니다.‘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계시고임마누엘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천사가 보여 준 환상에 순종하여 힘든 시기에 아내를 보호했던 요셉처럼,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아파하는 이웃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봅시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을드러내기 위해오시는 예수님을온삶으로 영접하게 하소서.

 

1128()4554:12-17흑암을 밝히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40일간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심으로써 공생애 사역에 필요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은 그 시작부터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 무대는 성전과 예언자들의 도시 예루살렘이 아니라, 농부들과 어부들이 어울려 사는 곳으로, 유대인이 하찮게 여기던 갈릴리였습니다. 이 지역에 대해 이사야 9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11-2.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은 또한 보잘것없는 것을 사용하시어 위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가의 가버나움을 활동의 거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사망의 그늘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빛이 비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세례 요한과 똑같이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치셨습니다. 대림절 첫 주,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회개의 마음이 아닐까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림통치에 맞게 나의 삶을 조정해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오늘날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아보고 나눔을 실천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입술의 열매가 있는 예배자,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복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1130()47112:9-21회복시키시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과 종교적 형식주의에 젖어 있는 바리새인 사이의 긴장이안식일 논쟁으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도착하시고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하자,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법적이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이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양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양을 끌어내야 하며, 사람이 양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 다음,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드디어 바리새인들은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기적을 행했고,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합법적인 범죄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인생을 회복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큰 소리 내지도 아니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이방인들이 그 이름에 희망을 거는 분입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싸우지도 고함치지도 않으셨듯이,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우리도 대적하는 사람들과 다투지 않기로 다짐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모든 행동의 기준이 사람의 이목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게 하소서.

 

121()24913:31-35천국의 비밀을 보이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역을 진행하시면서 종종 대적들과 논쟁하시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신령한 것에 기초를 두어야 했기에, 왕이신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십니다. 무리가 해안에서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을 때,‘겨자씨와 누룩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다른 씨들보다 작지만 시간이 지나면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됩니다. 또 가루 서 말 속에 감추어져 있는 누룩은 전체를 부풀립니다.

이 두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 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신비를 말해 줍니다.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여 마침내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참 평안과 안식을 제공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겨자씨의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외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누룩의 비유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 성장을 보여주는 복음의 역동성이 강조됩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까닭은 예부터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이 이루어지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신비로운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 곧 하나님의 힘과 성령의 권능 안에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 주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가 어떻게 교회의 신비와 관련되는지 공동체의 형제자매와 서로 얘기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씨앗의 작은 것에 주목하지 않고 그 생명력이 갖는 심오한 신비를 보게 하소서. 

 

122()8721:1-9의롭고 겸손하게 다스리시는 하나님

예루살렘 입성과 더불어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시고, 주인이 묻거든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일러주십니다. 백성들은 나귀를 타고 성안으로 입장하시는 예수님을 길 위에 겉옷과 나뭇가지를 깔고호산나라고 외치며 환호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상황에 의해 지배당하는 희생자가 아니라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승리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셨고, 선지자 스가랴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겸손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선언하실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스스로 백성의 주님이시고 성전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에서 승리의 입성이라고 하는 이 사건보다 더 슬픈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은 도시가 들끓을 정도로 환영을 받았지만, 군중들은 며칠 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돌변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반대로, 제자들은 지상의 왕국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은 모든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뜻이 겸손하게 이루어지는 사건이 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예수님은 겸손의 능력으로 자신이 왕이심을 나타내셨는데, 우리의 모습은 좋은 옷과 좋은 차가 먼저인지 아니면 참 겸손과 말씀에 대한 사랑이 먼저인지 묵상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나귀를 타신 겸손한 왕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123()1082:1-6베들레헴에 탄생하신 하나님

동방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할 왕이신 예수님을 위한 왕국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왕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성대한 환영식도 없었습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지, 새로 태어난 왕의 처소가 어디인지 물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헤롯 왕은 몹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겠는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미가의 예언을 인용하여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 찾아온 이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언된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곳이 베들레헴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행히도 영적인 무지와 어두움에 빠져 진정한 왕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대림절, 영적인 무지와 교만함이 아닌 지혜와 겸손함으로 우리를 다스리실 구원의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천탄을 기다리면서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꼭 실천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여러 가지를 핑계 삼아 주저하고 있는 신앙을 불쌍히 여기사, 동방박사들과 같은 열정으로 왕이신 예수님을 경배하게 하소서.

 

124(주일)1166:30-35생명의 양식, 예수

주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떡은 우리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떡으로 대표되는 양식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떡을 먹으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 즉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신 것처럼, 생명을 살리는 복음 전도자의 사명 또한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불어 오늘 말씀을 통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양식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하늘의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양식은 육신의 배고픔만 해결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육의 양식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절대공간,‘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은 오직 주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며, 이 영혼의 배고픔은 생명의 떡이신 주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영혼의 배고픔으로 근심하고 계시다면, 생명의 떡이요 참된 음료가 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선포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이웃에게 육신의 떡과 생명의 떡을 나누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생명의 양식인 주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125()1058:12세상의 빛, 예수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어둠이라는 뜻도 됩니다. 어둠은 사람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매게 만듭니다. 앞을 볼 수 없기에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 바로 어둠에 사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세상의 어둠에 방황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야 선지자는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2라며 빛이신 평강의 왕이 오실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빛의 가장 큰 능력은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또 어둠은 빛이신 주님 앞에 굴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내가 과연 빛이신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나는 여전히 어둠을 그리워하며 어둠을 향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빛은 생명이며, 빛을 원하고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빛을 받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 땅에서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복음 전도자의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격려와 칭찬을 합시다.

기도/ 하나님, 빛이신 주님을 따라가는 전도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126()54010:1-9양의 문, 예수

양은 성경에 나오는 많은 동물 중 대표적인 가축입니다. 양은 복슬복슬한 털이 있고 성격도 순하고 청각이 뛰어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양은 가까이에 있는 물체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시력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우리들의 인생도 이 양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우리들은 바로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양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양이 목자를 의지하듯이 인생의 목자이신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양의 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은 입구에 있으며, 바깥과 안을 통하게 합니다. 문은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에 들어서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왕궁 문에 들어서면 왕궁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요, 교회 문에 들어서면 예배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신 주님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면 구원을 받고 꼴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의 문이신 주님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누구든지 양의 문이신 주님을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의 대상을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아롱진 양과 검은 양을 구분하거나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주의 백성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천 속에 만들어 놓은 벽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모든 이웃들이 양의 문이신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여 주소서.

 

127()56910:11-16선한목자, 예수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함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선함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들의 선함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가장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을 결정할 때 그것이 나에게 이익을 주는가 아닌가를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가장 그 극단에 있는 존재가삯꾼입니다. 삯꾼은 무조건 나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시선에는나의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그의 양들사람들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의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의 선하심을 닮아 가고자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고 말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왜곡된 선, 의 유익을 구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백성들입니다. 그러기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의 유익을 위해 나아가는 주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이웃에게 한가지 이상의 선한 일을 실천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128()54211:25-27부활과 생명, 예수

사람들은 죽음을 마침표로 생각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죽음 이후에 삶은 없다고 규정해 버립니다. 그렇기에 죽음이 오기 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싶어하고 즐거움에 집착하면서,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을쉼표로 규정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5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것과 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잔다는 것은 언젠가 일어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이라고 하는 생각을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생각으로 바꾸어지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믿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이 믿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각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기도/ 하나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129()38014:1-6길과 진리와 생명, 예수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목적지에 곧장 가기도 하지만 이리 저리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못된 길을 선택함으로 애써 수고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네 인생에 참 진리와 생명으로 가는 길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시며 진리이시며 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 참 진리와 생명이 있고, 그곳에서 근심의 문제도 풀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1고 선포하십니다. 참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근심 중 가장 큰 근심은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인 하늘나라를 보여 주고 계시며, 이 하늘나라는 오직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만난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1210()19115:1-8참포도나무, 예수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신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진짜 같은 가짜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짜에 더 유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종종 가짜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와도 거짓으로 포장한 뱀의 유혹을 받은 후 선악과를 보고 이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36a. 가짜인 줄도 모르고 매력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한계인 것입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유일한 방법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신앙의 기본을 지키는 것입니다. , 말씀과 기도, 예배 등에 힘쓰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씀과 기도, 예배 등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 증거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붙어 있다는 것은 항상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과 기도, 예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기본에 힘쓸 때 믿음의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대림절,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함께하여 귀한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나 나누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주 안에서 열매 맺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소서.

 

1211(주일)11112:1-2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영적 예배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영적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합당하고 마땅한예배를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참된 예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참되고 바른 예배, 합당한 예배는 성도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여기에서 몸은 좁게는 육신의 몸을 뜻하고, 넓게는 성도의 삶 전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선다는 것은 단지 주일날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행위를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부름 받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땅한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그의 중심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이러한 예배의 정신이 회복될 때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가인과 아벨 모두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이 있고, 받지 않으시는 제물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대림절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삶입니까?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마음을 담아 이웃에게 전할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중심이 오직 주님께로 향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1212()2762:13마음을 찢고 주께 돌이키는 예배

회개는 단순히 죄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서돌이키는것입니다. 회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교묘한 자기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중심과 존재를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옷을 찢는 것은 감춰졌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남에게 보이기 위해 겉모습만 취하는 것입니다. , 회개의 모양은 있으나 회개의 중심과 삶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찢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회개를 했는지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며,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경멸하고 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이기에, 삶의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회개는 마음을찢는 것입니다. 마음을찢어 내야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릅니다. 영혼의 고통, 삶의 저항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성도를 죽이는 고통이 아니라 성도를 살리는 고통입니다. 죄라는 깊은 악성종양이 우리 몸에 침투하였기에 그것을 도려내고 들어내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지만,‘찢어 내야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도의 삶에 진정한 회개, 마음을 찢는 회개를 명령하십니다. 회개는 진정한 예배이며, 성도가 살아나는 길입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마음을 찢고 돌이키는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용서를 베풀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주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마음을 찢는 그 고통이 참된 기쁨이 되게 하소서.

 

1213()52858:6-12메마르고 황폐한 곳을 회복하는 예배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는 금식입니다. 이는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이고,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행동입니다. 이후 주린 자와 빈민들과 헐벗은 자를 돕는 금식입니다. 금식의 초점이가 아닌이웃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이웃은 사회적인 약자들과 결핍된 자들입니다. 타자를 위해 금식하는 자를 위해 하나님께서는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8,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9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예배보다 메마르고 황폐한 곳을 회복하기 위해 드려지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예배가 무너진 성도에게 찾아가 위로하고,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환경과 상황 속에 있는 곳이 회복되도록 돕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 우리의 예배의 초점은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메마른 땅이 회복되고, 황폐한 곳이 다시 세워져서 물 댄 동산과 같

이 되는 예배를 함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심령이 메마르고 황폐해진 성도와 모임이 온전히 회복되도록 도움의 손길을 건넵시다.

기도/ 하나님, 예배하기 어려운 성도들이 회복되고, 황폐한 예배의 처소가 온전해지게 하소서.

 

1214()254삼상 7:3-12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예배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한 필요조건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우상을 제거하고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믿음의 결단은 입술의 고백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 내 삶과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예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이키기 위해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제거한 후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에벤에셀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에 화답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심으로 회개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한 발자국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두 팔 벌려 안고 품으십니다.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사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과감하게 포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키지 못한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계십니까?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자고 권면합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안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게 하소서.

 

1215()4256:6-8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선한 예배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참된 예배와 성결한 삶을 잃어버린 유다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미가를 통해 심판과 견책의 말씀을 계속해서 전하십니다. 그러자 마치 하나님을 이방신을 섬기듯, 제물로서 만족시킬 수 있다고 여겼던 이들은 하나님께어떤 제물얼마나드려야 자신들을 심판에서 건져 내시고, 또 복을 내려 주실 것인지 노래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제물로 달래어 그 노여움을 풀고, 자신에게 복을 주는 지극히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기만적인이방신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금하셨던맏아들을 드리는 인신 제사까지 드리겠다는 영적인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어떤 제물과 희생제사라도 그 가운데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고, 바른 삶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선한 것입니다. , 오직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예배는 내 삶을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있습니까?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회 속의 불의에 항거하고,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삶의 예배를 드립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사회와 이웃과 가정에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가 되게 하소서.

 

1216()274:23-24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하여 정오에 물을 긷던 여인, 그녀에게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깊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만족을 찾을 수 없었고, 세상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던 그녀의 삶은 마치 정오의 뜨거운 햇빛과 같이 메마르고 황폐한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말씀하시며, 오직 예배를 통해서만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누릴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만남입니다. 예배 안에는 영생의 생수가 흘러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부어 주시기 위해 예배자를 찾고 계시며, 바로지금참되게 예배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 영적이고 긴급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예배, 마음과 행동이 다른 예배를 통해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성령을 통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갈급한 당신을 찾아오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 주기 원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예배는 성도의 온전한 기쁨입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고단한 세상속에서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생수와 같은 위로와 도움, 그리고 복음을 전합시다.

기도/ 하나님,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온전한 마음과 진리의 바른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

게 하소서.

 

1217()205:14-16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예수님을 환호하던 무리들이 주목했던 것은 예수님을 태웠던 나귀가 아니라 예수님이었습니다. 찬양받고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예수님이지, 나귀가 아닙니다. 나귀가 주목받고 영광 받으려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빛을 비추라고 하실 때, 그것은 착한 행실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성도의 착한 행실로 드러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비추기 위함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복음과 십자가 앞에서 나의 착한 행실은 언제나 감추어져야 합니다. 내가 드러나고 내가 영광 받는 순간, 주객이 전도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고, 사람이 높아지는 예배의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내가 높아지고 나를 자랑하는 모습이 예배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중심과 예배의 태도를 점검하며 돌아봅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나님의 빛이 비춰집니다. 하나님의 빛을 가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이 대림절 우리의 마음과 예배를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고 나는 숨겨지도록 이웃과 교회를 위해 착하고 선한 일을 행합시다.

기도/ 하나님, 예배하는 내가 드러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소서.

 

1218(주일)101130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예배자

본문 1절에서는 거센 파도에 삼켜져 허우적거리는 예배자가 희망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부르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내 예배자는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위기로 끝없이 추락하는 영혼을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7라며 마음과 시선이 하나님을 향할 것을 촉구합니다. 환난이 삶을 엄습하고, 위기를 타개할 일말의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예배자의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희망의 원천은 사유하심이 주께 있다4a는 진리를 깨닫는 데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5라는 고백이야말로 영혼이 소생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예배자는 조급해하지 않고,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6라며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생명의 진리를 찾고 깨다 온몸으로 실천합니다.

대림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어둠이 지나고 빛이 비칠 것입니다. 어둠으로 가득 찬 삶에 빛이신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응답을 기다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평안을 고통으로 신음하고 아파하는 이웃에게 전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평안한 쉼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오니,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219()104121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믿는 예배자

순례자와 같이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는 자들에게 삶을 위협하는 극심한 고난과 환난은 언제나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말하는 산은 예배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오를 때 보게 되는 주변 산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시온의 성산을 향하는 자신을 지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심오한 차원으로 나아갑니다.‘지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사마르보호하다’, ‘지키다’, ‘엄중히 지켜보다’, ‘소중히 돌보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본문에만 6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배자가 시온 성전에 오르기까지, 해와 달5-6, 모든 환난7등 험난한 방해 요소들이 있었지만, 그의 삶은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8라는 미래에 대한 약속과 하나님에 대한 송축으로 절정을 이루며 끝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과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심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께서 노래하는 이를 지켜 주심을 보증하는 화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시며, 그 어느 것도 우리를 상하지 않게 하심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대림절을 기다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만유의 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에 경제적으로 힘든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실천을 해 봅시다.

기도/ 우하나님,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하소서.

 

1220()112123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예배자

본문에는 예배자의 시선을 나의 눈1, ‘종들의 눈2, ‘여종의 눈2처럼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이 시선들은 모두 한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2b라는 고백은 예배자의 시선을 온전히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은혜를 간청하는 것이 바른 태도임을 일깨워 줍니다. 마치 종들이 주인의 손을 바라보고, 상전이 그들의 남종과 여종에게 친근함과 관대함의 표시로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예배자로 살기 위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예배자는 안일함과 교만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4라고 고백하며 예배자가 자칫 빠지기 쉬운 유혹을 경계합니다. 악인들은 교만하고 약자를 괴롭히며, 성공과 부를 자랑하고 거만하게 말하지만736-9그것은 바른 예배자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예배자는 날마다 죄를 경계해야 하며 주님의 은혜를 바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와 건강, 입술의 말은 이웃을 섬기는 소중한 자산임을 몸소 보여 줍시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베풀어 주실 은혜만을 구하오니 응답하여 주

소서.

 

1221()125124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예배자

시편 기자는 삶을 위협하는 것들을 맹렬한 노여움3, ‘휩쓸어 가는 물4, ‘사냥꾼의 올무7같이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히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난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목숨을 해하려는 악한 세력으로 인해 자력으로 벗어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비유한 것으로, 예배자는 인간의 권력이나 능력이 아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회상하며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1라는 고백은 삶의 질고와 위협에서 도움의 손길을 펼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 채로 삼켰을 것이며2-3라며 만약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 도움을 주신다면 피할 길이 있을 것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가뭄과 기근, 홍수와 지진, 전쟁으로 고달픈 삶을 사는 이웃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봅시다.

기도/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악한 세력으로부터 나의 영혼을 건져 주심에 감사하게

하소서.

 

1222()123126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예배자

만약 당시에도 신문이 있었다면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한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1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 백성은 기나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자유민이 되어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451의 칙령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할 수 있게 됐습니다대하 36:23.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하였도다2라는표현에서 엿볼수 있듯이,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4절에 등장하는 남방 시내들은 건기에는 바짝 말라서 바닥을 드러내지만 우기가 되면 순식간에 범람하는 강이 됩니다. 혹독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 위기, 홍수와 태풍, 지진과 해일,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 넘쳐납니다. 산적한 문제와 위기가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남방 시내들의 변화처럼 놀랍게 일어납니다. 그 구원을 이미 경험한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뿌리는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자가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 은혜를 전해 봅시다. 그리하여 온 세상의 구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오심을 함께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하나님의 구원의 감격을 기뻐하는 예배자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이웃을 돌보고 섬기는 일에 동참합시다.

기도/ 하나님, 지구촌 곳곳에 만연한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고통 중에 있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소서.

 

1223()109128온 가족이 함께 주를 경외하는 예배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결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다1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자는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삽니다. 주님의 복은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복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힘겨운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 결과입니다.

가정은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통로가 됩니다127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라는 말씀처럼 믿음으로 하나 되는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세대를 지나도 이어지는 신앙의 전통을 가진 가정으로, 굳건하여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온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위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예배하는 가정, 서로를 축복하는 믿음의 가정을 꿈꾸십시오. 이러한 가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아파하는 이웃을 위로하는 말을 건네 봅시다.

기도/ 하나님, 온 가족이 주를 경외하게 하시고, 세대를 거듭하여 주님의 복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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